대부분 금융기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뚜렷한 성장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상반기까지는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성장률 전망치를 낸 곳은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KDI는 지난달 22일 한국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5.5%로 잡았다.
정부 재정효과 일시적
2일 오후 3시 신대방동 전문건설공제조합빌딩에서 개최한 공개 세미나에서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은 내년 한국 경제가 4%도 성장하지 못하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50원에서 1150원 사이를 오갈 것으로 내다봤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주요 시장인 해외 선진국 경제가 대부분 1%대 저조한 저성장세를 내년에도 이어갈 것이라는 점이 근거였다. 대부분 주요 금융기관과 달리 낮은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한 이유로 김 소장은 여전히 부동산 시장의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은데다, 임금 감소로 인해 민간 자력으로는 소비가 회복되지 못하리라는 것도 상대적 저성장 전망의 이유였다.
▲김광수 소장. ⓒ김광수경제연구소 제공 |
실제 이 연구소에 따르면 가계의 순이자소득(금융자산 이자-금융부채 이자)은 지난 2002년 이후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부채를 과도하게 짐에 따라, 금융자산으로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빚으로 인해 생기는 이자를 갚는데 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환율도 원화 강세 압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가계의 실질소득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원인으로 꼽았다. 김 소장은 "현 정부 출범 초기 실시한 고환율 정책으로 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저평가된 데다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원화는 내년에도 강세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주요 기관이 내년 상반기 큰 폭의 성장세를 예상한 근거인 올해 하반기의 빠른 회복세도 평가절하했다. 총 300조 원이 넘는 대규모의 경기부양책 효과인데, 성장잠재력 마련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정부 재정투입을 제외하면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재고투자는 여전히 내년에도 저조할 것으로 연구소는 내다봤다.
김 소장은 "희망근로사업, 청년인턴제, 4대강 사업 등 부양책은 대부분이 대규모 토건사업과 일시적 실업대책 및 소득보전 수단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문제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적자재정 동원으로 국가채무가 급증해 순채무 상태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엉터리 지표 심각"
나아가 김 소장은 정부 등 한국 주요 기관이 발표하는 각종 통계의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 근거로 김 소장은 먼저 통계청이 발표하는 제조업 평균가동률이나 산업생산 지표와 수출입 실태의 괴리를 들었다. 이와 관련,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0.2%를 기록해 지난해 6월 이후 15개월 만에 80%선을 넘어섰다.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제조업 생산관련 지수만 보면 한국의 제조업은 이미 '호황상태'이지만 수출·입은 전성기에 비해 20%가량 부족하다.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가 초호황 상태에 있다는 통계가 나왔음에도 그 실적을 나타내는 수출입 추이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무역협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도 수출과 수입 전망치는 각각 3935억 달러, 3837억 달러로 지난해(4220억 달러, 4352억 달러)보다 규모가 적다.
이런 결과는 실업률 통계에서도 엿보였다. 최근 한국의 실업률은 10월 말 현재 3.4%로 상당히 안정된 수준이다. 취업자수는 이미 9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지표부터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김 소장은 지적했다. 김 소장은 "정규직을 희망하는 비정규직이나 구직자 등을 모두 포함한 '광의의 실업률'을 뽑아보면 15% 수준을 넘어섰다"며 "어디의 통계가 맞느냐는 여기 계신 분들이 확실히 아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산업의 평균임금 추이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가계소득추이는 일정한 기존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이 감소하고 취업은 늘어나는데도 가계소득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GDP 디플레이터 추이. 경제위기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2분기 사이에도 하락 움직임은 없었다. 이 자료로만 보면 한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관련 물가상승률 지표는 정반대를 나타낸다. ⓒ한국은행 |
물가상승률 통계도 믿기 어렵다고 김 소장은 지적했다. 최근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떨어져 2%중반대를 유지, 단순 지표로는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이미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져 디플레이션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GDP 디플레이터(명목GDP/실질GDP, 경제 전반의 총체적 물가를 나타냄) 증감율 추이를 보면 올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상승 기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현재 GDP 디플레이터는 전년동기대비 3.0% 상승했으며, 위기감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올해 사이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우려되는 모습이다. 물가를 놓고도 통계가 정반대 현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는 미국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GDP 디플레이터가 나란히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것과 상반된다.
김 소장은 "통계의 앞뒤가 이렇게 맞지 않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라며 "경제분석가 입장에서 한국의 통계는 볼 때마다 당혹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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