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결재한 의견에 반대한 위원장…"인권위 사상 초유의 사태"
지난 1일 오전 7시, 인권위 임시 전원위가 열렸다. 오는 21일 결심 공판을 앞둔 문화방송(MBC) <PD수첩> 관련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내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이 낸 이 소송은, '언론의 자유'라는 인권 의제와 관계가 있다.
인권위 사무처가 전원위에 상정한 의견은 "공적 영역에서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 충돌할 때 언론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런 의견은 부결됐다. 인권위원장을 포함한 인권위원 11명 가운데 10명이 참가한 이날 전원위에서 찬성 의견을 낸 위원은 5명, 반대한 위원은 5명이었다. 재적 과반수(11명 가운데 6명)가 찬성해야 한다는 인권위 규정에 따라 부결된 것.
특이한 것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다른 인권위원들 사이의 의견은 '5대 4'로 찬성 입장이 우세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전원위에 상정된 안건에 대해 위원장이 반대한 것은 위원회 설립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원위에 상정된 의견은 인권위 사무처가 마련한 입장으로, 위원장의 결재를 거친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처의 의견에 반대한다면, 사무처를 통할하는 위원장이 결재를 하지 않았으리라는 설명이다.
다른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 경우가 몹시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형식논리로만 따지면, 설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위원장은 안건을 상정하는 것에 동의했을 뿐, 의견 자체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현 위원장은 <PD수첩>의 방송 내용이 허위 사실에 바탕한 악의적인 보도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보고 앞둔 정치적 결정"
▲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뉴시스 |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는 행정부 소속 부처와 달리, 독립기구인 인권위는 대통령 특별보고를 한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전임 안경환 위원장 시절에는 대통령 특별보고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병철 위원장에 대해서는 가까운 시일 안에 대통령 특별보고가 예정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인권위 보고인 셈이다. 배여진 활동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코드를 맞췄던 현 위원장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권위 관계자 역시 "<PD수첩> 재판은 공직자의 정책 수행에 대한 비판 수위를 결정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중요한 재판에 대해 인권위가 의견을 내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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