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여야는 논란이 많은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 한 가지 합의를 도출했다. 비정규직 법안 내용 중 '차별금지 조항'의 문구다. "차별처우란 임금과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이라는 게 합의 내용이다.
이 조항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길 바라는 민주노동당과, 차별처우의 기준으로 '직무 기술능력', '성과' 등을 명문화하길 바라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정부 간의 입장 차로 1년이 넘게 논의가 계속됐어도 합의가 되지 않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룬 합의지만, 이번 합의로 노동현장에 차별이 일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노동현장에서 그간 있었던 '눈에 보이는' 현격한 차별은 다소 줄었겠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차별적 요소들이 일소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권 전문가들은 차별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차별'을 눈치채는 '인권 감수성'이 있어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정작 자신은 차별적 행위를 저지르고 있지만, 본인은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진 1 - 책 표지〉
이런 점에서 최근 손문상, 오영진, 홍윤표 등이 참여해 발간된 인권 만화책 〈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손문상 외 그림, 창비)은 무릎을 치게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003년 발간된 〈십시일反〉(박재동 외 10인, 창비)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을 주제로 기획한 두 번째 만화책이다.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부산일보 등에서 시사만평을 그렸던 손문상 화백은 '비정도시' 등 다수의 만평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정규직외 탑승금지'라고 적힌 버스 푯말 앞에 지친 몰골로 서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린 만평 '통근버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비단 '노동현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님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산업재해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병실에 누워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사업주가 "옵션이 중요하거든"이라는 말과 함께 '산재소송'보다 '공상처리'를 강요하는 장면을 그린 만평 '탁월한 선택'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상 불안이 산재보험 적용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2〉
이밖에도 비정규직은 농성조차 지하실에서 해야 하는 현실('농성은 아무나 하나')이나 '계약해지'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를 낳고도 어두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인 한 어미의 고통('아가도 비정규') 등이 손 화백의 만평에 잘 드러난다.
특히 자신은 '용역 철회'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지만 갓 취직한 아들에게는 "노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다짐하는 한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의 자기분열상을 그린 단편 만화 '완전한 만남'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은 이유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차별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곳에서는 가해자가 되고 어떤 장소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개개인의 자아마저 흔들어버린다.
〈사진3〉
〈사이시옷〉에는 노동현장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등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공간 속에 차별이 어떤 '옷'을 걸치고 숨어 있는지를 때로는 심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린 단편 만화들이 있다.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들은 책 제목을 〈사이시옷〉으로 지은 이유에 대해 "'사이시옷(ㅅ)'이 낱말과 낱말을 이어주는 것처럼, 이 책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시옷'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들 말처럼, 각박한 사회 생활 속에서 무뎌진, 아니 감춰진 우리들의 '인권 감수성'을 〈사이시옷〉을 읽고 되살려봐도 좋을듯 하다.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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