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 시골촌놈이 바라본 서울은 되게 삭막했고 무서웠어요. 차가웠구요. 근데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서울에도 아직 따뜻한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공연에 와서 '감동을 가져가십시오'라기 보단 '잘 쉬어가시고, 따뜻함 많이 채워가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고향 아시죠? 전라도 순창, 순창 고추장의 순창이요!"라며 밝게 웃는 조순창 배우. 서글서글한 눈매만큼이나 시원스런 웃음을 가진 그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서울에 막 상경했을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이 올라왔어요. 그룹사운드를 하다가 대학가요제 나가려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는데, 미사리에 가서 노래 부르시는 분들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죠. 아는 형 녹음실에서 은박지 돗자리 깔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삼각김밥 먹고. 그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구요."
"예전에 책 봤을 때 한 페이지 보고 가슴 답답해서 덮고, 천장 한 번 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좋은 텍스트 덕분에 각각의 캐릭터들을 잘 소화해낼 수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노트르담의 콰지모도 역은 굉장히 무거웠어요. 소리 자체도 한번도 숨을 들이마신 적이 없을 정도로 내질렀구요. 그래서 소리가 답답하고 무겁고 절규같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제 소리 맘껏 쓰고 있어요. 이 작품이 저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소극장을 무서워했어요. 2002년도에 '아름다운 침묵'이라는 장애우 연극을 했었는데, 그때 울면서 고백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열심히 열연하던 중에 앞에 앉아계신 관객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눈물 흘리면서 침 튀기고 이러니까 '어~' 하면서 막 피하시더라구요. 이번엔 다행히 우는 장면이 없는데, 이곳(명보아트홀)도 무대와 객석이 굉장히 가까워서 좀 걱정돼요." 발가벗겨진 느낌 때문에 소극장 무대를 피해왔던 그는 이번 공연은 자신에게 큰 도전이라며 속내를 내비쳤다. "그래도 덕분에 오히려 더 뻔뻔해지고 더 자신감에 차지지 않을까 의심해봐요! 기대돼요. 노트르담 같은 경우는 굉장히 멀었잖아요. 절 보러 와주신 그 어떤 분의 손을 잡기 위해선 뛰어나갔어야 했는데, 여기서는 한 발만 움직이면 그 손을 잡을 수 있어요. 가까운 만큼 제 연기에 담겨있는 마음도 조금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그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보시다시피 제가 얼굴도 크고, 몸도 크고, 키도 크잖아요? 소극장에 저하고 저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 두 명만 들어서도 소극장이 꽉 차요. 어느 날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야, 세종문화회관 3층 끝에서 널 봤는데 넌 표정까지 다 보이더라?' 호쾌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는 서른 살의 성숙함 대신 익살꾸러기 아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떤 분께서 그런 글을 올리셨더라구요. '뮤지컬 '연탄길'은 스타를 한명도 쓰지 않고 뮤지컬 배우들만 모여서 하는 뮤지컬이다. 이런 뮤지컬을 계속 기다려왔다.' 저희는 가진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크게 어필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진심으로 초대하고, 찾아오시는 분들께 희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잘해서 공연을 잘 만들어나가는 게 지금 저의 희망이 될 거구요. 보러 와주시는 관객분들이 걸고 오시는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게 또 다른 희망이 될 것 같습니다. 편히 들르셔서 따뜻하게 쉬었다 가세요."
인터뷰 내내 큰 체격 때문에 행여나 공간이 협소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그의 모습에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속에서 가늘고 길게 살아남아 관객몰이를 하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눈빛에는 희망의 에너지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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