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해 촛불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대해 사실상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돼 온 정부기관의 인권위 권고 무시 관행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비록 불법집회라도, 경찰이 함부로 폭력 쓰지 말라는 권고였는데…"
인권위는 18일 "시위진압용 살수차 사용에 대해 구체적인 법적 기준을 마련할 것을 지난달 권고했지만, 강희락 경찰청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권위는 "경찰청장이 일부 권고에 대해선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지만 그 역시 권고를 제대로 수용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경찰청장은 방어위주의 경비원칙을 엄수하라는 권고에 대해 "평화적 준법집회는 적극 보호, 보장, 지원하되 불법폭력시위는 인권과 안전에 유의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정한 물리력을 사용해 엄정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권고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권고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비록 불법집회라 하더라도 △후퇴하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사진 촬영하는 사람, △폭행을 만류하는 사람, △넘어진 사람, △비무장상태의 여성과 청소년, △의료지원활동을 하는 사람, △평화적으로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 등에 대해서는 경찰관이 일방적인 공격 및 폭행을 자제하여야 한다"는 게 인권위 권고 취지였기 때문이다.
경찰청장이 준법집회와 불법집회를 분리하여 불법집회에 대하여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우려를 드러냈다. 인권위는 "(집회 참가자에 대한 경찰의 인권침해와) 유사한 내용의 진정이 현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경찰청장의 '엄정 대응'이라는 방침이 경찰청에서 통보해온 바대로 '인권과 안전에 유의한' 적정한 물리력 행사가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장, 폭력 행사 확인된 지휘관에 대한 징계 거부
또 지난해 6월 촛불집회에서 현장지휘 책임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본부장과 4기동단장에 대해 징계조치할 것을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경찰청이 서면경고에 그치거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인권침해 행위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미흡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시민통행을 제한하지 말라는 권고에 대해서도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시민들에 대한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며 "해당 권고를 이행했다는 경찰 입장과는 달리 일부만 수용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촛불집회 당시 집회 참가자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후퇴하는 사람, 비무장상태의 여성과 청소년, 의료지원 봉사자 등에게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게 근거다.
인권위는 지난달 27일 강희락 경찰청장에게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방어위주의 경비원칙 엄수, △지난해 6월 1일과 같은 달 28일 이뤄진 과도한 진압작전에 대한 지휘 책임을 물어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본부장(당시 서울청 기동단장)과 4기동단장(당시 4기동대장)에 대해 징계조치 할 것, △시위진압경찰들의 투척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 △시위진압용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경우 최고 압력이나 최근 거리 등 그 구체적 사용기준에 대해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소화기를 사람에 대해 사용하지 말고 소화용으로만 사용할 것, △집회시위현장 부근에서의 광범위한 통행 제한을 하지 말 것, △조사를 받는 피체포자에게 반성문이라는 내용과 형식의 자술서를 받는 관행을 중단할 것, △경비업무시 착용하는 의복에 식별표식을 하고 업무를 담당할 것 등을 권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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