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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남미엔 ALBA가 있다

베네수엘라가 주도하는 국가 간 '현물거래' ALBA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인양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도 FTA 협상을 타결하고 국회 비준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로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양자간 무역이 반드시 대세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가 주도하는 '미주 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 Alternativa Bolivarian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주도해 결성된 이 무역협정기구는 기업의 이익, 신자유주의 확산에 반대 기치를 내걸고 '민중의 이익'과 '현물거래'를 표방하고 나섰다.

미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두 축, 베네수엘라와 쿠바 간 협정으로 시작된 ALBA는 현재 남미 3개국(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중남미 2개국(온두라스, 니카라과), 카리브해 4개국(쿠바, 도미니카,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엔티가바부다)의 가입국에 4개 초대국(멕시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자메이카), 1개 옵서버(베트남)로 구성된 대규모 무역 공동체로 성장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ALBA를 단일 화폐단위를 이용하는 한 단계 높은 공동체로 성장시키려 한다.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하나인 북한도 ALBA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14일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독자적인 금융체계 창설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ALBA를 집중 조명하며 "남아메리카 나라들은 경제무역활동에서 서방금융기구들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통화 및 지불분야에서의 협조를 강화하는 한편, 자체의 지역금융기구들을 창설하는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는 아직은 생소한 ALBA식 무역협정 모델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7일 국제통상연구소(소장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볼프강 곤살레스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를 초청해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협정(FTA)의 대안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추진 중인 ALBA에 대한 강연회를 가졌다. 강연은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오후 4시부터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ALBA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국가로의 진입을 위해 질주하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이에 이날 곤살레스 대사가 설명한 ALBA를 간략히 소개한다.


▲ ⓒ국제통상연구소 제공

ALBA란 무엇인가

ALBA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를 스페인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의 이름을 본따 만들어진 일종의 무역협정이다. 정식 명칭은 ALBA-TCP다.

ALBA가 내건 핵심 기치는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눈다'이다. 신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인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과 일견 비슷해 보이는데, 곤살레스 대사는 "상호 협력 정신이 강조된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석유를 지원하면 쿠바는 그 답례로 의료서비스를 무상지원하는 식이다. 베네수엘라는 초대국인 아르헨티나와도 석유-소 현물거래를 실시하고 있다.

초대 ALBA의 핵심모델이 이처럼 물물교환식 거래로 자리잡은 이유로 곤살레스 대사는 "가입국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라며 "생산물품을 현금거래할 경우 제품 질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현물거래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ALBA가 내건 핵심기치는 '민중'이다. 곤살레스 대사는 "신자유주의적 통합은 대기업의 이해에 기초했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ALBA는 빈곤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를 위한 투쟁"이라고 했다.

보다 강력한 통합을 위해 ALBA는 다음 열 가지 장애물 제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빈곤 △국가 간 불평등 △과도한 외채 △세계무역기구(WTO)식 규제 △정보접근을 가로막는 장애 △언론 독점 △과도한 민영화 △시민참여권 박탈 △자유무역 △라틴아메리카 분열이 그것이다.

ALBA의 조직구성은 지난 2007년 제5차 정상회담에서 완성됐다. 회원국들이 의장으로 참여하는 이사회 산하에 각료 이사회와 사회운동 이사회가 구성된다. 그리고 정치·경제·사회·금융·에너지·환경·청소년위원회 등 소위원회가 설치돼 각 분야별 이슈를 점검하고 모델을 생산한다.

ALBA의 탄생

ALBA 창립 논의는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라틴아메리카는 북미에서 탄생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아르헨티나와 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가 탄생시킨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Mercosur), 안데스 공동체(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카리브해 15개국이 만든 카리브 공동체(CARICOM) 등의 경제블록화가 급격하게 추진되고 있었다.

이즈음 쿠데타 실패 후 출소한 우고 차베스는 집권에 성공, 2001년 열린 제3차 카리브 연합국가 정상회담에서 ALBA 창립 논의를 본격화한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신자유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민족 주권, 즉 라틴아메리카 민족의 자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본뜬 것은 이 때문이다.

2004년 12월 14일,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정상이 ALBA 연구를 위한 협정문에 조인하면서 ALBA는 닻을 올린다. 이듬해 4월 27일과 28일 이틀간 하바나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은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2006년 4월 29일, 볼리비아의 참여도 이끌어내 ALBA 창립 선언이 '민중무역협정(TCP, Tratado de Commercio entre los Pueblo)' 체결로 결실을 맺는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ALBA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온 세계 민중 중심의 자유무역기구' 모델로 확대시키자"는 제안이 새로운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공동체 출범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같은 해(2006년) 6월, 베네수엘라 마라카이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정식 명칭이 'ALBA-TCP'로 결정된다.

ALBA 탄생에 대해 곤살레스 대사는 "시몬 볼리바르의 정신을 이어받은 라틴아메리카 연맹이 유럽과 미국에서 생겨난 경제동맹에 맞서 ALBA를 탄생시켰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ALBA는 라틴아메리카를 하나의 나라로 묶어 미국에 맞서려는 야심을 가진 우고 차베스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반영됐다. 엄밀히 말해 ALBA는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민중의 해방'을 표방한 경제동맹으로 돌려 말한 이데올로기적 공동체 성격을 가진다. 정식 명칭(ALBA-TCP)에서 유추할 수 있듯 'ALBA 정신에 입각한 민중 중심의 자유무역협정'이 보다 정확한 말이다.

볼리비아에 이어 2007년 니카라과와 온두라스를 시작으로 참여국은 점차 늘어났다. 아르헨티나 등 대규모 경제국가까지 이 모임에 초대된데 이어 베트남마저 옵서버 자격으로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ALBA-TCP는 남미의 한계(ALBA)를 넘어서 민중 지향성(TCP)을 보다 강하게 띌 기반을 마련했다.

ALBA의 미래

▲ ⓒ국제통상연구소 제공
초기 ALBA가 민중과 현물거래를 내세웠다면, 앞으로 이 공동체는 점차 EU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단일시장을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단일 화폐 '수크레(Sucre,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 이름을 본땀)' 창립 준비를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논의는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제3차 특별 정상회담에서다. 이 회담에서 ALBA 회원국과 에콰도르를 단일한 화폐 경제권으로 만들자는 구상안이 나왔다. 이를 위해 안정화기금을 운용키로 하고, 지역화폐위원회를 설립키로 했다.

곧 이어 제6차 정상회담에서는 단일화폐를 찍어내는데 필요한 이른바 'ALBA 은행'을 만들기 위한 초기 자금 집행이 승인됐다. 은행의 설립 자본금으로 10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으며 본부는 베네수엘라에 두기로 했다. 올해 들어서는 지역화폐위원회의 운용 방향이 더욱 구체화됐다. 지역화폐위원회는 단일 화폐 수크레의 최고 결정 기구로, 일종의 중앙은행 이사회가 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ALBA의 미래상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석유다. 곤살레스 대사 스스로도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석유는 ALBA를 묶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단일화폐공동체가 중남미 국가를 통합한다면, 석유는 카리브해 국가를 끌어들이는 도구다.

지난 2005년 베네수엘라가 13개 카리브해 국가들과 조인한 페트로카리브(PETROCARIBE) 에너지 협력 협정이 시작이며, 이는 'ALBA-카리브 기금' 설립으로 구체화됐다. 베네수엘라가 자본금으로 5000만 달러를 출자키로 한 ALBA-카리브 기금은 카리브해 국가들의 경제와 사회개발 기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협정문에 따르면 유가가 50달러를 넘을 경우, 회원국은 구입비용의 40%를 지원받을 수 있다.

남미 최대의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석유의 힘으로 역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ALBA를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미나 유럽처럼 중남미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나아가게 된다면 ALBA와 메르코수르, 즉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간 주도권 다툼은 불가피하다.

이는 아시아통화기금(AMF)으로 동북아에서도 서서히 경제공동체 이슈가 떠오르는 지금, 한국에도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AMF는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경쟁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곤살레스 대사는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ALBA의 가장 중요한 기조는 라틴아메리카의 결속이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모델이 신자유주의적 기치를 거부하면서도 자유로운 무역을 가능케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ALBA는 지금도 확대의 길을 걷고 있다. 자유무역의 주인공은 꼭 기업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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