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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저예산 SF 수작, <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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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지 말아야 할 저예산 SF 수작, <더 문>

[뷰포인트] 샘 록웰의 1인 2역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더 문> 리뷰

(* 세 번째 문단부터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황홀하고 화려한 CG와 극적인 액션, 긴박한 스릴의 상황이 동원되는 SF(혹은 SF를 표방한 액션 활극)가 워낙 많이 나오고기 때문에, <더 문>은 일견 지루하고 초라한 SF로 보일 수 있다. 허허벌판 달 표면 위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기지의 외관과 실내의 풍경은 물론이고, 주연배우도 달랑 샘 록웰과 케빈 스페이시 두 명이다. 게다가 케빈 스페이시는 목소리로만 출연한다. (그는 인공지능 컴퓨터 '거티'의 목소리를 맡았다.) 샘 록웰의 아내나 딸, 혹은 이 우주기지를 건설한 글로벌 기업의 중역은 거의 단역으로나 등장하는 정도다. 이 정도 되면 거의 배우 한 명의 '모노드라마'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더 문>은 역으로, 돈을 별로 들이지 않아도 훌륭한 연기와 연출만으로도 흥미진진한 SF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영화다. 신인감독인 던컨 존스가 이 영화에 들인 제작비는 총 5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50억 남짓하는 돈이다. 그러나 샘 록웰의 황홀한 1인 2역 연기에 영화 자체가 던지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더해지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 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샘 벨(샘 록웰)은 달에 우주기지를 세운 한-미 합작 글로벌 회사에 3년 계약을 맺고 달 기지에서 외로이 근무하고 있는 남자다. 그의 임무는 달 표면에 쌓여있는 헬륨3를 지구에 정기적으로 송출하는 것. 전세계가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경험한 뒤 달 표면의 헬륨3를 무공해 청정원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정된 근미래가 배경이다. 그리고 영화의 공간은 철저하게 달 표면 위에 세워진 '사랑' 기지에 한정되며, 그나마도 기지 안 세트가 주요 공간이다. 지구와 실시간 통신은 끊어진지 오래고, 샘은 목성을 통해 전송된 영상 메시지만으로 지구 위의 가족과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정해진 일을 하며, 남는 시간을 모형 조립과 흘러간 옛 TV쇼를 보는 걸로 떼우는 매우 외롭고 단조로운 일과다.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그가 계약만료 2주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지구로의 귀환을 고대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과를 보내던 그는 이상한 환각을 보기 시작하고, 원료 채취 임무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어떻게 구조됐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이 기지 안 의료실에서 깨어난다. 영화의 진짜 미스테리와 사건은 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 <더 문>

<더 문>은 SF장르에서는 매우 익숙한 설정인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다. 기지 안 금지된 구역 안에는 똑같은 외모로 잠들어있는 무수한 샘 벨이 즐비하고, 3년의 시한부 목숨을 가진 이 복제인간들은 자신이 클론임을 모른 채 그저 조작, 주입된 기억만을 가지고 '계약 초기 사고로' 깨어났다가 3년을 채운 뒤 죽는다. 기한이 만료되거나 극한 부상을 당한 클론은 폐기되며, 살아 생전,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클론임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진짜 사건은, 절대로 서로의 존재를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두 클론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하지만 익숙한 설정과 장르문법을 사용하면서도, <더 문>은 매우 새롭고 참신하며 흥미롭다.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아니 의심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가 실은 클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격일 터이다. 영화는 '이전의 샘'이 '새로운 샘'을 만난 뒤 비밀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혼란과 충격뿐 아니라, 그로 인한 정서적 파장과 고통을 매우 절절하게 묘사한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복제인간 설정의 영화가 일반적인 '도플갱어 공식'(자신의 도플갱어를 본 이는 반드시 죽는다, 혹은 한쪽이 다른 쪽을 죽이려 든다)을 따르는 것과는 달리, 두 클론이 서로 유대감을 느끼며 서로 협조하고, 궁극에는 다른 이를 죽이지 않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들이 특별히 착하고 희생적이어서라기보다는, 극도의 고립감과 고독, 혹은 서로에 대한 동질감과 연민이 충격과 혼란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샘(이전의 샘은 보다 온화한 성격에 다소 무기력한 면이 보이는 반면, 새로운 샘은 좀더 다혈질에 에너제틱하고 급한 성격이다)은 서로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격한 대결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들을 착취한 거대기업의 음모에 맞서는 한편 예정된 운명을 거스르고 지구로의 귀환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영화는 흔하디 흔한 '클론 설정'의 영화가 손쉽게 드러내는 주제인 '정체성'을 보다 심도있게 다루는 동시에, 이 한계를 넘어 도약한다. 한국의 관객 입장에서는 클론들의 운명을 보며 1회용으로 소모되고 버려지는 일반적인 비정규직의 현실을 겹쳐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감독이 이를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7, 80년대에 나온 무수한 '낡은 SF영화들' 스타일의 SF영화를 기획하면서 주인공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설정한 것은 이러한 해석을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 <더 문>

두 명의 샘 벨(정확히 하자면 세 명)을 연기해 내는 샘 록웰의 연기는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두 클론의 서로 다른 성격을 묘사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비밀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나 고독, 단조로운 일과에서의 무기력감 등 복합적인 감정들을 절절히 표현해낸다. 굳이 SF의 팬이 아니어도, 샘 록웰의 연기만으로도 황홀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사실 이 영화는 애초에 샘 록웰의 팬이었던 감독이 자신의 차기작 <뮤트>(리들리 스콧이 제작을 맡았다)의 캐스팅 과정에서 샘 록웰과 의견차가 생기자 '오로지 샘 록웰과 작업하기 위해' 쓴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사실 샘 록웰은 국내에 '스타급 배우'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연기에 반한 조지 클루니가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웰컴 투 콜린우드>를 위해 조연을 자처하고 제작까지 맡은 건 이제 유명한 일화가 됐다. 이후 조지 클루니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 <컨페션>에서 샘 록웰을 주연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샘 록웰의 연기에만 전적으로 기대는 영화인 것은 아니다. 다소 소박한 스토리라인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서 스릴을 만들며 긴장과 공포, 충격을 만들어내는 솜씨와, 샘 록웰의 연기를 적절하게 조율하고 대립시키는 던컨 존스의 연출 솜씨는 신인감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고 솜씨있다. 리들리 스콧이 자신의 후계자로 던컨 존스를 지목한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던컨 존스가 위대한 뮤지션 데이빗 보위의 하나뿐인 아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기지 이름이 '사랑'(한글로도 또렷이 표기된다)인 것은, 감독이 워낙 한국에 관심이 많은 데에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보며 오마주를 바치고 싶어했기 때문. 감독이 굳이 한국 개봉에 맞춰 내한해 기자간담회 등을 진행한 것도 이같은 한국에 대한 관심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세 관람가, 11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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