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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가는 금융 피해…소비자 보호 전담기구 설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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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가는 금융 피해…소비자 보호 전담기구 설립 필요"

김상조 교수 "금감원 겸업 한계 많아"…현실적 어려움 지적도

성장하는 금융시장에 발맞춰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전담기구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한국은 금융감독원이 금융민원센터를 운영 중이며, 소비자원도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11일 한국금융연구센터가 주최한 '금융소비자 보호 : 현안과 정책 과제' 포럼에서는 이와 같은 의견을 비롯해, 현재 한국 금융소비자 피해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를 밝히는 토론이 진행됐다.

금융소비자 보호 전담기구 창립 논의의 배경은 갈수록 금융소비자 피해사례와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소비자 권익은 그에 걸맞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권을 시끄럽게 했던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금융지식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소비자들은 고위험 첨단금융상품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금융허브전략은 금융소비자층을 보다 넓히고 있다. 원승연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자산 잔액은 1990년 말 4.1배에서 지난해는 8.5배로 늘어났다.

반면 금감원의 민원센터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현실적으로 인력이 부족해 금융회사 직원들이 상담원으로 일할 정도다. 상황에 따라 가해자(금융기관)가 피해자의 사례를 접수받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금감원은 조직생리상 금융규제·감독업무에 보다 중점을 두는 바람에 소비자 보호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감원 단독 소비자보호 제도, 현실적으로 작동 어려워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주요 해외 금융선진국가의 사례를 들며 한국의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조직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독특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금융감독 업무와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 민원·분쟁 처리 업무가 모두 금감원에 집중돼 있다. 소비자원은 전반적인 소비자 문제를 담당한다. 반면 김 교수가 비교대상으로 제시한 캐나다, 영국, 호주, 미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담 업무가 나뉘어 있었다. 특히 캐나다는 위 세 가지 업무가 모두 분리돼 있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한국금융연구센터 제공
김 교수는 "금감원에 업무가 통합돼 신속성과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지만 금감원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가 금융감독 업무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금융감독기구가 직접 민원·분쟁을 처리하는 것 역시 대단히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금융분쟁 해결은 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행정부서로부터 독립돼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금융회사가 금감원의 민원·분쟁 처리를 규제로 받아들이면서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금융소비자들이 감독기구를 불신하기 때문에 소비자 역시 감독기구의 민원·분쟁 해결 절차를 따르지 않고 법원 소송에 더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금감원이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금융감독기구가 감독 대상이 되는 금융기관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또 다른 기득권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된다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금감원에서 제대로 된 업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맡은 인력은 총 137명이다. 금감원 전체 인력 1697명의 8.1%에 불과하다. 그리고 금융회사에서 보낸 파견인력 41명이 통합콜센터에서 전화상담 업무를 돕고 있다.

반면 지난 2001년 출범한 영국의 통합 금융민원 처리기구인 FOS(Financial Ombudsman Service)는 400여 명의 임직원과 20명 정도의 옴부즈만으로 구성돼 있다. 인력의 한계로 인해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동원 금감원 부원장보도 "전체 민원의 2/3가량은 현실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하다. 금융소비자에게는 제대로 감독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금융기관에는 못 살게 군다는 비판을 받는다"며 "인원을 늘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 있다"고 토로했다.

'투 피크 모델' 논의 필요

반면 금융민원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원승연 교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3년 5만5000여 건이던 금융감독원의 유형별 금융상담 및 민원 접수 건은 작년 5만7000여 건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3만8000여 건의 민원을 접수했다.

금융기관 유형별로 보면 은행과 보험부문 접수량이 많았다. 올해 상반기 전체 접수 민원건수 중 은행과 카드부문 접수건수가 1만6000여 건에 달했고, 보험은 1만9000여 건에 달해 두 기관에서 특히 분쟁이 많았다.

▲원승연 영남대 교수 ⓒ프레시안
금융민원 증가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인해 금융기관의 취급 업무범위가 중복되고, 투자상품 개발이 더욱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금융서비스로 인해 투자자들의 금융상품 접촉면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키코, 펀드 등 불완전판매 사례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게 이를 입증한다. 김 부원장보는 "지난해 파워인컴펀드 50% 배상 판결이 일간지 톱기사를 장식했다. 분쟁조정업무를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펀드파동으로 인해 앞으로 소비자 보호 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따로 떼어 내 단독기구를 세우자는 이른바 '투 피크(two peak) 모델'을 김상조 교수가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늘어나는 금융 민원을 사실상 한계를 보이고 있는 금감원에만 맡기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이는 이미 국회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지난 9월 2일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국회의원 21명은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 개정안에는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 안이 들어가 있다. 금감원처럼 금융소비자보호원을 금융위원회의 지도·감독 당국으로 만드는 형태다.

김상조 교수는 이 안에 대해 "한국 현실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실질적인 독립성을 확보할지 의문"이라며 "캐나다처럼 조직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설립해야 하며,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감독기구가 행사하는 지도·감독권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나다는 금융감독은 OSFI(Office of Superintendent of Financial Institutions)와 증권위원회가, 금융소비자 보호는 FCAC(Financial Consumer Agency of Canada)가, 민원·분쟁처리는 5개의 독립기구가 각각 분리해서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토론회에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통합감독의 장점을 쉽사리 포기하기 어렵다는 점과 함께 한국 현실에서 독립 보호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한철수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은 "감독당국이 지금보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심을 더 키운다는 전제만 있다면 통합형의 장점을 살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김병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기관 감독과 소비자 보호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조직이론상으로는 무조건 분리하는 게 맞다"면서도 "이 경우 소비자 보호 체계를 업권별로 나누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가 생긴다. 법체계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금융 손실, 소비자 책임은 없나?"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금융투자상품 피해에 금융소비자의 책임은 없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불완전 판매(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판매)와 정보 비대칭성(판매자가 아는 수준의 정보를 금융소비자는 획득하지 못한 상태)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분명 판매자인 금융회사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융소비자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황영기 KB금융지주 전 회장을 물러나게까지 한 우리파워인컴펀드를 비롯한 다수 손실 펀드와 가입 중소기업을 존폐의 기로에 몰아넣은 키코(KIKO)가 이와 같은 논의에 불을 댕겼다. 우리파워인컴펀드는 지난해 11월 금감원이 50% 배상안을 내놨으며, 투자자 일부는 보다 많은 손실액을 금융회사가 물어야 한다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9월 역외펀드 선물환 피해자모임들의 소송으로 화제가 됐던 해외펀드 환손실 판결은 서울지방법원이 금융회사의 배상책임을 60%로 내렸다.

두 사례 모두 금융피해에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투자자도 일정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상당수 투자자들이 고위험 상품 가입시 비록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들, 형식적으로는 투자동의서 등에 사인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날 포럼에 참석한 다수 참가자들은 이런 문제 예방을 위해 투자자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부 교수는 "사후 구제제도로는 사전에 올바른 선택기회를 보장해주기가 어렵다"며 사전적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사전심의제도 등 관련 제도를 강화하고 금융소비자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투자자 교육을 실시한다면 어느 누가 거기 참여하겠느냐"며 "판매인 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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