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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끊긴 자식이 부양비 냈다고?"

참여연대, 간주부양비 폐지 공익소송

서울 동자동 쪽방촌. 어떤 이들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싶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한때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던 이 모 할아버지도 그렇다. 그가 쪽방이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덕분이었다. 그는 기초생활급여를 받아 지난해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그러나 올 겨울을 넘길 자신은 없다. 이번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때문이다. 같은 제도가 이 할아버지를 한번은 녹여주고, 한번은 얼어붙게 했다. 얼마 전, 그는 기초생활급여가 끊겼다. 사위가 진급을 해서 소득이 늘었다는 게 이유다. 동사무소 직원은 부양의무자인 딸이 경제적 여유가 생겼으므로 이 할아버지는 급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기초생활급여로 쪽방 월세를 냈던 그는 이제 갈 곳이 막막하다.

물론, 딸이 실제로 돈을 보태준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딸과 연락이 끊긴 지 벌써 십 년째다. 이 할아버지는 소식도 모르는 딸 때문에 다시 노숙을 하게 됐다.

자식에게 받았다고 '간주하는' 부양비

이런 사례가 많다. 실제 부양의무자로부터 지급받고 있지 않지만 서류상 지급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부양비, 이른바 간주부양비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간주부양비는 부양의무자의 실제 소득에서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를 뺀 뒤, 여기에 0.3을 곱한 값이다. 정부는 간주부양비를 기초생활수급자의 소득으로 계산한다. 간주부양비가 실제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는, 앞서 사례처럼 기초생활수급자의 형편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급여가 줄거나 자격이 박탈되는 일이 생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간주부양비 폐지를 위한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원고인 윤 모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자인데, 생계급여가 매월 37만4060원에서 매월 4만6030원으로 깎였다. 사위의 소득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올해 8월 일어난 변화다. 12일 소장을 제출하며 참여연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 포함된 간주부양비 관련 규정은 '소득이 아닌 것'을 '소득'으로 규정했다"면서 "이는 위헌, 위법 규정"이라고 밝혔다.

시행령에 있는 간주부양비 관련 규정이 상위 규정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어긋나는 이유에 대해 원고 측 변호를 맡은 이찬진 변호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실제 소득이 아닌 가상 소득을 규정할 재량권을 대통령령에 위임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시행령(대통령령)으로 간주부양비를 규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줄 경우, 간주부양비 관련 시행령은 효력을 잃는다.

부양비 못 받는다고 인정하길 꺼리는 부모들

▲ 간주부양비 폐지 공익소송을 진행하는 김영수 변호사와 이찬진 변호사가 12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가했다. ⓒ참여연대
이번 공익소송을 준비한 참여연대 측은 원고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간주부양비 관련 규정 때문에 제대로 급여를 받지 못한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지 않았던 걸까. 그렇지는 않다. 이들의 수를 정확히 집계한 자료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빈곤층임에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숫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는 게 정부 측 발표다. 이 가운데 상당수에게 간주부양비 규정이 적용됐으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소송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드물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소송에 나설 경우) 그나마 받던 급여도 줄거나 끊기는 등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한 이유로 꼽았다. 다른 이유도 있다. 자식에게서 부양비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꺼리는 수급자가 많다는 것. 이찬진 변호사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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