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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자동차의 실패를 기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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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자동차의 실패를 기억한다면…"

[화제의 책]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삼성 그룹이 곧 오너 경영체제로 복귀하리라는 예상이 종종 나온다. 대개는 삼성 관계자들의 희망사항이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책임지고 의사결정할 사람이 없다"는 게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이런 주장의 바탕에는 "조직을 이끄는 결정은 최고권력자가 혼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여럿이 모여 토론하는 방식으로는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비슷한 생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 앞에서 옳고 그름을 놓고 따지는 일은 대개 부질없이 끝나곤 한다. 이건희나 박정희와 같은 의사결정방식이 옳지 않다는 점을 입증해도, 이들은 이런 믿음을 고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럿이 모여 토론하는 일이 비효율적이라고 믿는다. 의견이 다양해지면, 조직은 '사공이 많은 배'처럼 돼 버린다는 게다. 이런 믿음이 깨지지 않는 한, 이건희나 박정희와 같은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프레시안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라는 책이 나왔다. 제목 그대로다. '사공이 많은 배'가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항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에는 이견, 즉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아서 실패한 사례가 가득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CIA가 1961년 추진한 쿠바 피그스 만 침공이다. 쿠바 혁명 지도자 카스트로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지원하려던 이 계획은, 거꾸로 카스트로에게 더 큰 힘을 싣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계획이 실패한 뒤, 당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몹시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참모들을 탓했다고 한다. 케네디의 참모들은 무능했던 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다른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분위기가 문제였다는 게다. 당시 참모들은 대부분 출중한 인재들이었지만, 아무도 피그스 만 침공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침공 계획에 회의적인 이들이 제법 있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열린 회의는 실패가 예정된 결정을 내렸다.

특정 견해가 세를 불리기 시작하면, 그 방향으로 '쏠림 현상'이 생겨나는 게 한 이유다. 어떤 이들은 정보가 부족해서 남들의 주장에 동조한다. '왠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속에서 올라와도 그냥 삼키고 만다.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탓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평판' 때문에 '쏠림 현상'의 포로가 된다. 특정 견해가 윤리적으로도 옳다는 믿음은, 선명성 경쟁을 낳는다. 강경한 주장을 낼수록 좋은 평판을 얻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주장을 비난하는 게 선명성 경쟁의 한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적인 목소리를 얼마나 세게 짓밟는지를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면, 아예 다른 생각은 싹이 잘려버린다. 케네디 대통령의 참모들은 '온건파'라는 낙인을 두려워 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반공 이념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 이랬다. 운동권 내부에서 벌어진 논쟁도 가끔 이런 식이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자동차 사업에 무모한 투자를 할 때, 삼성 내부 분위기도 비슷했다. 황우석 사태가 한창일 때와도 닮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군사정부가 철권통치를 하던 때라면, 피그스 만 침공 당시처럼 이념 대립에 따른 냉전이 한창일 때라면, 이견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설명하는 게 쉽다. 그러나 이런 시기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획일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책은 투자 클럽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자금을 공동으로 출자하고 주식시장에서 공동으로 투자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어느 투자 클럽은 몹시 사교적이었다. 구성원끼리 자주 만났고 친분이 두터웠다. 그런데 수익률은? 최악이었다.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사교적 관계가 제한된 모임이었다. 논쟁의 유무가 차이를 갈랐다. 사교적인 모임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의견을 냈다가 친분이 깨질 것을 우려한 이들 사이에선 '쏠림 현상'이 생겨났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도 획일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한 이유가 '친분'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그렇다면, '친분 쌓기'가 꼭 나쁘기만 한 걸까. 그럴 리는 없다. 다른 생각을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짜 친한 사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내 생각은 너와 달라"라고 말하길 주저한다. 논쟁을 승부로 여기는 문화 탓이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도전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갈라야 한다고 본다. 이러니 친분과 논쟁이 양립하기 어려울 밖에. '사공이 많은 배'를 몰아본 경험이 없는 사회일수록 이런 문화가 두드러진다. 다른 의견과 친분 가운데 하나를 버리기를 강요하면, 대개는 친분을 지키려 든다. 결국 수익률 최악의 투자 클럽 사례는 반복된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는 과정을 잘 관리하는 일이다. 한 의견이 기각되고 다른 의견이 채택되는 과정이 패배와 승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다. 그래야만 자존심을 내세워 무턱대고 우겨대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카스 R.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법학 대학원 교수는 <넛지>의 공저자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여름 휴가 기간에 읽었다는 바로 그 책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 유독 민감해 하는 이 대통령이 선스타인 교수의 다른 책도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경영복귀설이 나도는 이건희 전 회장에게도. 그가 자동차 사업의 실패를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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