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파업? 집단이기주의?
한 일간신문은 사설을 통해 노조들이 내건 '공공기관 선진화 저지'가 "그들 스스로 공공기관 방만 경영, 부실경영의 한 배경이라는 점을 호도하고 기득권에 연연하는 집단이기주의의 전락한 표출"이라고 규정했다. 노동조합 파업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논리다.
애초 헌법이 보장한 파업은 국민의 불편을 전제로 한 것이다. 도로를 보수할 때 차량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은 오로지 '국민의 불편'만을 절대화하며 파업행위를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간다. 헌법도 인정한 권리라면 자초지종을 따져야 하는데 말이다.
문제는 파업의 정당성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벌이는 파업이 그들만의 집단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파업에 따른 불편과 비판이 생기겠지만 더 큰 대의를 위한 것인지가 평가의 기준이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공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기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또 파업, 이기주의, 시민 볼모' 등과 같은 자극적 용어로는 생산적 논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나라 공기업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서민들은 공공서비스 요금 부담이 크고 공기업 운영도 투명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공기업을 망치고 있는가? '공공의 적'이 있다면 그는 누구인가?
▲ 공기업을 망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사진은 지난 4일 양대 노총의 공공연맹이 공동투쟁을 선언하는 기자회견. ⓒ연합 |
누가 수자원공사를 망치는가?
수자원공사라는 공기업이 있다. 정부는 4대강사업을 추진하느라 재정적자가 커지자 8조 원을 수자원공사에 떠 맡겼다. 결국 수자원공사는 사업비 마련을 위한 공사채 발행으로 부채비율이 5배나 늘어나고 이를 갚기 위해 돈벌이 경영에 나서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건 애초 수자원공사가 할 일이 아니었다. 누가 공기업 수자원공사를 망치고 있는가? 4대강 사업에 수자원공사를 끌어들인 정부, 애초 자기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수용한 수자원공사 경영진, 그리고 이 업무를 실제 수행할 공사 노동자. 이들 중 누가 공공의 적인가?
노동자도 한 통속일 수 있다. 정부가 시킨다고, 사장이 지시한다고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했으니 말이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 4대강 사업에 참여한 경영진을 비판한다면? 이는 경영권 침해로 징계감이다. 정부에 항의해 파업을 벌일까? 곧바로 정치적 목적으로 단체행동을 벌인 불법자가 된다.
철도공사 적자, 누구의 책임인가?
6일 수도권열차까지 일부 파업에 들어간 철도공사는 적자 공기업이다. 이 적자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국제철도기구에 따르면 철도공사의 노동생산성은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철도선진국의 2배에 달하는데 말이다.
철도는 초기설비투자가 막대하게 소요되는 사회간접자본이다. 정부의 재정투자가 필수적인 산업이다. 그런데 철도공사가 철도건설비를 상당액 떠맡고 있다. 수자원공사의 4대강사업 비용 부담과 비슷한 경우이다. 그래서 철도공사는 자구책으로 경부선, 호남선 열차를 요금이 비싼 KTX로 거의 교체했다. 건설비를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다.
그래도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근열차 등은 요금이 저렴한 편이다. 생산비의 70% 수준에서 서민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서민철도의 경우 원가에 미치지 못한 요금부족분을 공공서비스보전금(Public Service Oblig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지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부만 보상해준다. 그래서 한국철도의 적자는 '영업실패의 적자'가 아니라 건설비 자체 부담금, 보전금 미지급분 등 정부 책임 방기에 따른 '정책적 적자'라고 불리운다. 게다가 이제는 부실덩어리 인천공항철도까지 인수하게 되었다.
철도공사는 내년까지 영업적자를 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민영화하겠다는 철도선진화계획까지 통보받은 상태다. 그래서 무려 5115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이 집행 중에 있다. 누가 공공의 적인가? 공공서비스보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인천공항철도까지 떠맡기는 정부인가? 이를 비판하며 '시민의 발목을 잡는' 사람들인가?
누가 인천국제공항, 발전회사, 가스산업을 민영화하려는가?
인천국제공항도 곧 팔릴 모양이다. 이미 세계적 공항으로 명성을 얻었고, 재정적, 서비스 면에서도 괜찮은 공기업이다. 대한민국을 오가는 국가관문으로 경제, 문화, 안보 등 모든 면에서 국가 기간자산이다. 정부는 이것을 매각하겠다고 한다. 벌써부터 헐값 우려, 대통령 친인척 관련설이 불거지고 있다. 지금 노동자들이 매각 반대에 나섰다. 정부, 보수언론의 표현대로라면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누가 공공의 적인가? 국가기간자산을 팔려는 사람인가? 이것을 막겠다고 나선 사람들인가?
2002년 발전노조가 38일 동안이나 파업을 벌였다. 정부의 발전소 매각 방침에 항의한 파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발전소 매각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전력에서 발전부문을 분리하고 이것을 다시 5개의 발전회사로 쪼개었다. 그 결과 지금 바뀐 것은? 전기생산은 이전과 동일하게 이루어지는데 발전부문 회사수가 1개에서 5개회사로 분리되니 발전원료 구입비용, 전력내부 거래 비용이 증가하고 임원수도 4배나 늘었다. 공연한 발전부문 분리로 비용만 더 발생하게 된 것이다.
최근 정부는 전력산업에서 발전을 분리하는 게 적절치 않았다며 다시 재통합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발전소 매각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전력산업을 떼었다 붙였다 하려는 정부와 발전부문 분리와 매각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온 사람들 중, 누가 공공의 적인가?
2002년 정부는 가스산업도 민영화하려 했다. 가스공사의 주된 역할은 국제시장에서 가스를 도입하는 일이다. 가스는 장기계약으로 구매할수록 가격이 싸다. 그런데 정부는 가스산업을 민영화하면 민간자본이 새로 가스를 구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가스공사에게 장기 도입계약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가스산업 도입 민영화는 사실상 보류되었고, 이 때 장기구매를 하지 못해 초래된 기회비용 손실이 20년간 10조 원을 넘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다시 가스 도입을 민영화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촛불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국정운영을 반성하며 가스를 민영화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대통령이 마음을 바꾼 것이다. 누가 공공의 적인가? 좌충우돌 가스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인가?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인가?
이제 가리자, 누가 진짜 '공공의 적'인가?
많은 사람들이 공기업을 보며 공공의 적이라 분개한다. 공기업 내부구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공공부문 관련주체들을 한 보따리로 묶여 '공공의 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해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릴 것은 가리자. 그 안에는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는 정부도 있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무소신 방만 경영에 빠진 경영진도 있고, 회사 업무 지시대로 묵묵히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도 있다.
지금 공기업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내부자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그 결과 시민들의 발이 묶였다.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사회 집단이기주의를 통탄한다. 이제 말하자. 누가 진짜 '공공의 적'인가?
2002년, 2003년 철도노조는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을 벌였다. 민영화는 겨우 막았지만 수십명이 해고당했다. 2006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kTX 여승무원을 지원하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가 지금 100억대의 손해배상을 선고받았다. 서울역, 영등포역에서 장애인, 노인 등에게 열차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역사 공간을 장악한 백화점 판매대 치워 이용자의 이동 통로를 보장하라고 활동했던 사람들이 철도노조 조합원들이다. 인천공항철도 부실 원인과 의문들을 파헤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곳도 철도노조다.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서민들의 병원 문턱이 더 높아진다고, 건강보험으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해야 한다고, 환자 보호자들에 전가되는 간병업무는 병원이 맡아야 한다며 의료공공성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병원노동자들이다. 국민연금을 정부가 함부로 가져다 쓰고, 기초노령연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이 연금노동자들이다. 모두 6일 파업에 함께 나선 사람들이다.
정부는 어떤가? 인천국제공항 등 국가기간산업을 팔겠다고 한다. 공기업을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처럼 경영하라고 강요한다.
정부 지시를 경영 소신 없이 따르는 낙하산 사장님들은 어떤가? 공공부문 인력을 줄이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의 헌법적 권리를 구현하는 구체적 수단인데도, 일방이 해지를 통보하면 6개월 이후 무단협으로 되어버리는 법적 독소조항을 악용해 노사관계를 뒤흔들고 있다.
또 있다. 우리사회에 공론의 장을 제공하기는커녕 여론을 호도하며 생산적 토론을 가로막는 보수언론은 도대체 누구냐? 이들이 공기업을 망치는 공공의 적들이다.
공기업 노동조합, '진정성' 갖춘 일상 활동 나서야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이 못마땅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은 자신의 중요한 활동 방향으로 공공성 강화를 내건 탓이다. 자주 정부와 맞서고자 한다.
여전히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따갑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좋은 노동조건 때문이다. 보수언론들은 '철밥통' '신의 직장'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고용은 문제시될 것이 아니다. 노동자에게 고용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문에서도 인원 감축이 강행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곳들이 공공부문처럼 고용이 개선돼는 것이 정답이다.
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도 종종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주제다. 적정 임금수준이 얼마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없지만, 곳곳에서 88만 원 세대가 신음하는 지경이라 공공부문 노동자들로 향하는 화살이 날카롭다. 시급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자신보다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회구성원들과 소득을 함께 나누는 연대방안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내세우는 공공성 운동과도 걸 맞는 일이다.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이 평소에 시민사회와 별다른 연대활동이 없다가 정부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때가 돼서야 파업이라는 '고강도' 투쟁에 나서는 것도 문제다. 모범적인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일하는 공기업의 상업화, 관료화 문제가 있다면 이를 평소에 지적하고 이용자인 시민사회와 개혁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렇게 공공성을 중요시한다면 노동조합에 내는 조합비만큼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사업에도 참여하는 '저강도' 활동에도 나서야 한다. '진정성'을 가진 일상 활동의 밑거름이 있어야 시민사회에게 파업에 따른 불편을 인내해달라고 자신 있게 요청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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