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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뺨을 때리며 싸우더라도, 만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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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뺨을 때리며 싸우더라도, 만나는 게 낫다"

[토론회]'대학생, 선배들과 대화'…4명 패널이 경험담 밝혀

김민웅 교수 : 방북했을 때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어땠나요? 궁금한데….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 그거 말하기가…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갈 수도 있어서요. (웃음)


시종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원탁 토론회'라는 딱딱한 주제였지만 참석한 패널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풀어놓는 자리인지라 격의없는 토론회가 됐다.

3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이 주최하고 숭실대학교 형남공학관에서 열린 '80주년 학생의 날 기념, 2009 대학생, 선배들과의 대화'에는 1989년 당시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평양을 방문한 임수경 씨, 남북 정상회담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도종환 시인 등이 참여했다.

사회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우리 일상 속 이야기다"라며 "그걸 찾아내서 일상의 말로 이야기해보려 한다"고 토론회 취지를 밝혔다.

▲ 임수경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나에게 '친북 좌파 빨갱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난 좌파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대신 그는 "친북은 맞다"고 인정했다. ⓒ프레시안
임수경 "난 친북 맞다. 나라도 그들 편이 되어주고 싶다"

청중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패널은 임수경 씨였다. 1989년에 만 20살의 나이로 방북한 사실을 청중도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주위의 반응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솔직히 방북하고 난 뒤 교도소 몇 년만 갔다 오면 될 줄 알았다"며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교도소를 갔다오면 (사람들에게) 잊혀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며 당시 대학생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1989년 6월 30일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방북한 그는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한국으로 내려올 때까지 40여 일을 북한에 체류했다. 분단 이후 그렇게 오랫동안 북한에 체류한 민간인은 없었을 뿐더러 판문점을 통해 한국으로 내려온 민간인도 없었다.

그는 "당시 북한 사람 100만 명과 악수를 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로 방송됐다"며 "하지만 남쪽에서는 나의 행동이 색깔론에 휘말리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나에게 '친북 좌파 빨갱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난 좌파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대신 그는 "친북은 맞다"고 인정했다.

"지금 북한에 10대 후반의 아이들 중에는 '수경'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많다. 당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라도 그들 편이 되어주고 싶다. 나는 이런 마음이 우리 사회에 무리를 끼칠 게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그런 것에 공감했으면 한다.

한국에서 친북이라는 단어는 너무 부정적으로 이용을 당하고 있다. 보수 단체에서는 나를 두고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물론 남과 북이 충분히 친해지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민족 정서를 무시하기가 어렵다."

이재정 "우리보다 북한이 훨씬 변했다고 생각한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느꼈던 소회를 밝히며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정상 회담 당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는데 당시 공연이 끝난 뒤 박수를 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며 "박수를 치면 북한 사상에 동조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결국 여러 논의 끝에 각자 알아서 하자고 했더니 박수를 친 사람은 나와 노 대통령 밖에 없었다"며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참으로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말하는 "북한은 변한 게 없다"는 부분을 놓고 "경직된 건 우리"라며 "현재의 상황을 정직하게 놓고 보면 우리가 변한 것보다 북이 훨씬 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인해 남북 관계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사항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꿈에 그리던 남북 철도가 장관 재임 기간에 연결됐고 시험 운행까지 이뤄졌다. 그리고 문산과 개성에 각각 북측 철도 운행 사무소와 남측 철도 운행 사무소를 두기로 합의했다. 매일 정기적으로 기차를 운행하기로도 했다. 이게 지속됐다면 통일의 첫 단계를 뚫는 거라고 판단했다. 금단의 선에 매일 철도로 기차가 왕래한다? 꿈같은 일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 이날 토론회에는 50여 명의 청중이 참여했다. ⓒ프레시안

도종환 "계속 만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해야 한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도 현재 경색된 남북 관계를 두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한 발 늦은 정상회담'에서 찾았다.

그는 "정상회담을 정권 말기에 해서 회담을 통해 합의한 부분을 제대로 반열 위에 올려놓지도 못하고 정권이 교체됐다"며 "회담을 좀 더 일찍 해 합의 사항을 상당수 진행시켰다면 현 정권이 이렇게 남북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은 원칙적으로 언제든 대화를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의심스러운 북한과는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정상 회담을 통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며 "이걸 피하는 대통령은 여론의 공세가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준비가 필요해서 그런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자신이 방북해 북한 문인을 만난 경험을 설명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1년 8·15 통일축전 행사 때 북한을 다녀왔다"며 "거기서 만난 북한 문인들과는 많이 싸우기도 했다"며 "단어, 표현 등을 놓고 서로 의견이 달라 뺨을 때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싸우면서 합의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면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며 "자주 만나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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