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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지도사의 기발한 무용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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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지도사의 기발한 무용여행!

김긍수발레단 'La 춘향'의 임진호 무용수

▲ ⓒ프레시안

"연습하는 게 제일 큰 행복이에요." 매서운 눈매와 까슬한 파마머리에서 풍겨 나오는 강렬한 첫인상과는 달리 그의 미소는 스물여섯의 나이를 잊게 할 정도로 아이처럼 해맑았다. 휴일 없이 매일 5시간씩 연습한다는 임진호 무용수. 주변 사람들 얼굴 보기 힘들겠다는 말에 "여자친구 못 본지 한 달 됐어요. 하지만 그걸 이해 못해준다면 만날 수 없었겠죠. 친구들은 거의 못 봐요. 그래도 이 일에 만족해요"라며 싱긋 웃는다.

▲ ⓒ프레시안
다른 무용수들에 비해 늦게 무용을 접한 그는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무용에 발을 들이게 됐다. "어릴 때 방황도 많이 하고 사고뭉치였어요. 어느 날 아버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 '무용학원가서 한 달만 버텨봐라. 그리고 나서 하기 싫으면 그만 둬도 좋다.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다.' 왜 무용을 해보라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후에 왜 그때 무용을 해보라고 하셨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걸 시키고 싶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워낙 노는 걸 좋아했던 터라 그걸 다른 방법으로 돌릴 방책으로 시키신 것 같기도 하고, 아버님이 군인이셨는데 직업 자체가 보수적이고 억눌려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저에겐 좀 더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이제는 무용이 자신의 삶 같다는 그는 "집을 나올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왜 나는 지금 연습실로 가고 있는 거지? 왜 무용에 목을 맬까? 이렇게 힘든데.' 그런데도 무용을 하는 게 좋아요. 즐겁구요. 사실 (무용을 하는 것이) '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걸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라며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덧붙인다.

▲ ⓒ프레시안
"사랑이라… 사랑은 둘 사이의 끊임없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발레 'La 춘향'에서 이몽룡역을 맡은 그는 극 중에서 춘향이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변학도와 결투를 벌인다. "이몽룡이라는 캐릭터는 사랑을 갈망한다는 점에서 저랑 닮았어요. 전 누군가에게 관심 받고 사랑 받는 거 되게 좋아해요. 외동아들이라 혼자 자라다 보니 애정결핍증이 좀 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사랑을 쟁취하려는 갈망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한결같은 사랑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 속에서도 하나의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죠. 그것이 이몽룡이라는 캐릭터고 실제 사랑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제 다른 직업은 장례지도사예요." 그간의 행보에 대해 묻던 중 그는 불쑥 자신의 또 다른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와 이번 공연에서 변학도역을 맡은 경민이, 그리고 다른 친구와 셋이서 'I go'라는 작품으로 아비뇽 페스티벌에 나갔었어요. 제가 안무한 건데요, 죽음에 대한 내용을 다룬 작품이에요. 사실 학비를 벌기 위해 1년간 장례지도사 일을 했어요. 삼촌과 아버님 밑에서요. 두 분 다 현재 그 일을 하고 있으시거든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I go'라는 작품을 만들게 됐죠."

장례지도사의 경험은 그의 안무에 모티브로 작용했다. "가끔 새벽에 아버님께 전화가 와요.'고인이 많이 오셨는데 일손이 딸린다. 네가 와서 좀 거들어라.' 자다가 헐레벌떡 일어나서 양복을 갖춰 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뛰어가죠. 카트를 몰고 중환자실에서 고인을 모셔 와요. 따뜻한 고인을 곱게 초염(初殮)하고… 그런 과정에서 유족들의 말소리가 들려와요. 대성통곡하며 오열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이런저런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까지. 그런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순간의 감정 변화들이 모두 모티브가 되죠."

▲ ⓒ프레시안

그는 오는 12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던 'I go'로 다시 관객들을 찾는다. 그때의 일들을 얘기하려면 3박 4일은 걸린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냐는 물음에 예의 진중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작품에서 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랑의 다양성이에요. 아마도 공연이 올라가는 날까지 교수님께 계속 이런저런 부분들을 프러포즈하면서 제가 표현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게 될 거예요. 공연을 통해 다양한 걸 보시고, 다양한 걸 많이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피나 바우쉬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왜 좋아하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스타일이나 장르를 떠나 좋은 게 제일 좋은 게 아니냐며 반문하는 그의 얼굴은 다시금 해맑은 미소로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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