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예산기준으로 내년 정부총지출 증가한다고 발표
내년 예산안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수치가 규모이다. 내년 실질경제성장율(4%), 물가상승률(2.6%) 등에 비해 예산안 증감이 적절한 지를 판단해야 한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내년 예산안은 291.8조 원으로 올해 본예산 284.5조 원에 비해 7.3조 원, 2.5% 증가한다. 이 말을 그대로 믿어도 좋을까?
▲ 정운찬 국무총리가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201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대독하는 도중 야당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
올해 추경예산까지 포함한 실제 총지출은 301.8조 원으로 본예산보다 17.3조 원 더 많다.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내년 예산안 291.8조 원은 올해보다 10조 원, 3.3% 감소한 금액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내년 예산안 증감을 표기할 때 추경예산을 무시하고 오직 본예산을 비교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국민들에게 내년 예산안에 대한 전체 윤곽을 다르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심각한 행위이다.
혹 정부는 추경예산이 임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올해 추경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본예산 기준으로 내년 총지출을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만약 올해 추경으로 도입된 사업이 내년에 불필요하다면 그 사업을 폐지하거나 줄이고 그만큼 축소 금액을 정직하게 밝히면 된다. 처음부터 추경지출을 버리고 본예산기준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그래서 마치 내년 지출이 올해보다 늘어나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정부가 할 행동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예산안 증감 계산이 편법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다음 두 가지 사실에서 확인된다.
국회 심의용은 추경예산, 국민 홍보용은 본예산 기준
첫째, 정부가 예산안 증감을 계산할 때 '이중 잣대'를 사용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이 증가하고 있다는 착시를 유도하기 위해 편법을 작동한 것이다.
정부는 내년 사업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이를 요약 정리한 '예산안 개요'도 함께 발표한다. 전자가 국회 심의를 위한 문서라면 후자는 예산안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참고자료이다. 방대한 분량의 '예산안'과 달리, 28쪽에 달하는 '예산안 개요'는 세부사업을 다루지 않고 전체 정부총지출, 분야별 지출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과 언론이 접하는 자료가 예산안 개요이다.
정부는 국회 심의용 '예산안'은 상식대로 올해 추경예산 수치를 2009년 예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가 보아야할 수치는 올해 최종지출과 내년 예산안, 그리고 그것의 증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안'에는 본예산 수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지, '예산안 개요'에서는 추경예산 대신 본예산 수치가 중심으로 등장한다. 추경예산 기준 증감 수치도 각주에 한번 표기된 것이 전부다. 이후 분야별 사업 총액을 설명할 때 모든 금액은 본예산 수치만 제시된다.
<표 1>은 정부의 분야별 예산안 관련자료를 필자가 재구성해 만든 것이다. 정부의 예산안 개요에는 굵은 글씨로 표기된 2009년 본예산 수치만 나온다. 그래서 언론은 정부의 개요 자료를 근거로, 내년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증가한다고 보도했다. 기획재정부도 그렇게 설명했고, 대통령도 정운찬 총리가 대신 읽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그렇게 말했다.
개요에 따르면, 내년 복지지출도 올해 최종지출(추경예산) 80.4조 원이 아니라 본예산 74.6조 원을 기준으로 6.4조 원, 8.6% 증가한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실제는 0.6조 원 늘어날 뿐이다(제도적 자연증가분, 비복지성 보금자리융자금을 제외하면 실제 5조 원 삭감 효과. 관련기사 : "역대 최고 복지 예산? 복지사업 5조 삭감 불가피").
농림수산식품 지출도 개요에선 올해 16.8조 원에서 내년 17.2조 원으로 0.4조 원, 2.1% 증가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실제는 올해 17.4조 원에서 0.2조 원이 줄어든다. 중소기업 지원을 담은 산업·중기·에너지 지출은 올해 16.2 조원에 내년 14.4조 원으로 1.8조 원, 10.9% 감소로 표기되었지만, 실제는 올해 20.8조 원에서 무려 6.4조 원, 30.7%나 감소되는 것이다.
MB정부만 본예산 기준으로 개요 작성
둘째,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거의 매년 추경예산을 편성해 왔다. 이 때 역대 정부들은 다음해 예산안을 제출할 때, 추경을 포함한 최종지출 금액을 기준으로 예산안 증가 수치를 국민에게 발표했다. 본예산 기준으로 예산안 개요를 작성하는 정부는 이명박 정부 뿐이다.
<표 2>는 2000년 이후 '예산안 개요'에서 다음해 예산안 규모 증감을 계산한 기준을 정리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정부들은 항상 최종지출을 기준으로 다음해 예산안 증감을 계산하고 그 수치를 국민에게 보고해 왔다.
매년 추경이 편성되었던 2000~2005년은 각각 최종지출인 추경금액이 증감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단지, 2006년 예산안은 2005년 추경이 11월에 의결되어 예산안을 제출하는 10월에 이를 반영할 수 없어 본예산 기준으로, 2008년 예산안은 2007년 추경편성이 없었기에 본예산이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2000년부터 2008년 예산안까지 모두 최종지출 금액을 증감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들어 계산 방식이 달라졌다. 2009년 예산안 개요, 2010년 예산안 개요 모두 본예산 기준으로 증감이 계산되어 국민에게 홍보된다.
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발표하는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을 보면 더욱 한탄스럽다. <표 3>에서 2009년 총지출 수치는 최종금액인 추경예산 금액이 아니라 본예산 수치가 기입되어 있다. 만약 이 자료가 지금 상태로 정부 문서로 보관된다면 우리나라 재정지출은 2009년 301.8조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가 2010년에 291.8조 원으로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2009년 284.5조 원에서 매년 꾸준히 점증하는 것으로 보고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재정지출의 변화를 실제와 다르게 왜곡해 기록하는 일이다.
탁월한 경제학자, 국무총리의 생각은?
국회 대정부질문이 끝나면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다. 우리나라 예산안 국회 심사가 정부부처에 따라 구성된 상임위원회별로 진행되다 보니 전체 예산안 골격에 대한 심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전체 숲에 대한 심사는 없고 세부적인 나무만 바라보는 격이다. 숲을 바라보아야 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히려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나뭇가지(계수조성)에 더 관심을 두어 왔다.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 자료는 워낙 방대해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언론에 '예산안 개요'를 제공하고, 국회의원들도 이 개요를 기초로 예산안을 파악한다. 그런데 정부는 개요를 작성하면서 수치를 '마사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러한 일을 서슴지 않고 벌이는 것일까? 막 중도실용 행보를 시작한 마당에, 부자감세로 초래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지출 통제가 본격화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경기부양을 통한 경제성장률에 모든 것을 걸고 있기에 올해보다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내년 예산안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까 우려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부가 이래도 되는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과 달리 국민과 언론에 발표하는 '예산안 개요'에서 임의적으로 수치를 가공하고, 역대정부들과 달리 추경예산이 제외된 본예산 기준으로 예산안 증가를 발표하다니! 이는 국민들에게 내년 예산안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속 보이는 편법이다. 탁월한 경제학자로 존경받아온 국무총리께서는 이를 어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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