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일 1면 머릿기사로 "'유령 아파트'가 쏟아진다"는 제목으로 '아파트 광풍'을 비판하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의 평소 논조를 감안할 때 눈에 띄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올초부터 계속되다 최근에야 진정세로 돌아선 서울 강남발 아파트값 폭등 현상이 '공급 부족' 때문이라며 임기 내 500만 호의 아파트 공급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보금자리 주택 공급을 2012년까지 앞당기겠다면서 공급 위주의 주택 정책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토목 건설 뿐 아니라 주택 정책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감안할 때 <조선>의 기사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또 이 기사는 "'아파트 공화국'의 그늘"이라는 기획의 첫 번째 기사다. 앞으로도 몇 차례에 걸쳐 '아파트 광풍'에 대한 비판 기사를 연재할 계획이라는 얘기다.
"3년 이상 방치된 유령아파트 112개 단지"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에 있는 A아파트를 바라보던 주민 김모(52) 씨가 혀를 찼다. "해 질 녘만 되면 애들이 슬금슬금 저기로 기어올라간단 말이야. 동네에선 저 썩어 가는 아파트가 완전히 애물단지야."
3개 동(棟)으로 된 이 건물은 회색빛 외관의 골조(骨組)만 덩그렇게 올라간 채 공사가 중단된 '유령 아파트'다. 건물 사이 빈 공간엔 사람 키높이는 됨직한 잡풀이 무성했다. 폐허가 된 내부에는 썩은 물이 고여 악취가 진동했다. 깨진 유리창과 뜯겨 나간 창틀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조선>의 이날 1면 머릿기사에 인용된 사례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처럼 공사를 하다가 3년 이상 방치된 유령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112개 단지에 달하며 연면적으로 치면 여의도(850만㎡)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354만㎡나 된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완공은 됐지만 주인을 찾지 못해 빈집을 남아 있는 아파트도 전국적으로 5만 가구. 현재 공사 중인 미분양 아파트까지 합치면 13만 가구 수준이다. "미분양 급증으로 인해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들의 부도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짓기만 하면 무조건 돈이 된다'는 '아파트 불패 신화'만 믿고 건설사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파트를 짓다 자초한 자승자박"이라고 이 신문은 비판했다.
"망가지는 경관…그린벨트가 아파트벨트로"
이 신문은 특히 5면에 실린 "북한산.남산 턱밑까지 아파트 숲…갈수록 '도시의 흉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 정부의 서민주택정책의 상징인 '보금자리주택'을 무분별한 개발정책의 한 예로 들면서 비판했다.
이 신문은 '그린벨트가 아파트 벨트'를 소제목으로 달고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이 신문은 "수도권 그린벨트도 머지않아 아파트벨트로 바뀐다"면서 "정부는 2012년까지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용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 32만 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0년까지 분당신도시의 15.7배인 최대 308㎢(9300만 평)의 그린벨트 해제와 아파트 단지건설을 추진 중"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보존가치가 낮은 곳이어서 개발해도 환경 훼손은 없을 것"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 이 신문은 "그러나 전문가들은 획일적으로 아파트를 짓기보다는 주변 환경에 맞춰 단독, 저층 연립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신문은 또 "무차별적 그린벨트 개발은 문화재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면서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과 후손 700기의 묘가 모여 있는 서울 강남 수서동의 광평대군 묘역(서울시 유형문화재 48호)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그 가치가 훼손될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묘역 남쪽에 보금자리주택(세곡2지구)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이어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정부와 서울시는 아파트를 더 높게 더 쉽게 지을 수 있도록 최근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고 정부와 서울시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이처럼 '아파트 열풍'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낸 것은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으로 다시 부동산 투기 조짐을 보이는 등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로 크게 타격을 받았던 건설사들은 정부의 지원정책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완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경기가 과열 현상을 보이면서 분양시장도 과열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10월을 지나면서 지속적인 상승세로 인한 피로감과 정부의 대출규제(DTI) 정책 등의 영향으로 다소 진정세를 보이는 국면이다.
한편 이날 <조선일보>에 아파트 관련 광고는 하나도 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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