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에서 윤이상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가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그 후 독일에 정착한 윤이상은 많은 나라에서 위대한 작곡가로 존경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통영의 바다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경계를 넘어선 예술가 윤이상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는 세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음악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노래했던 위대한 음악가의 삶과 예술을 우리에게 전한다.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의 경계, 남한과 북한의 경계,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를 가로막는 벽을 허물고자 노력했다. 그는 서양의 음악어법에 동양의 전통음악을 융합하여 현대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만들었다. 그는 남한과 북한이 참여하는 합동 오케스트라를 통해 통일을 염원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했다. 그는 열정적인 예술가이면서 우리 현실의 아픔을 노래하는 한국인이었다.
이 연극의 모든 장면은 윤이상 음악의 선율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초기 장면에서는 서정미가 가득한 '윤이상'의 가곡 <고풍의상>, <나그네>, <편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초월한 새로운 음악으로 시도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도 선보인다. 북한을 방문한 윤이상이 평양에서 보았던 강서고분 사신도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이마주>(IMAGES), 감옥에서 절망에 순간에 창작한 희극적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 역시 윤이상의 예술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오랜 전통을 가진 궁중무, 박자 관념도 없는 춘앵무의 춤곡, 그리고 서양의 역동적 율동을 표현한 춤곡의 조화를 이루는 <무악>은 오묘한 동서양의 만남을 표현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은 <광주여 영원히>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뜨거운 분노를 절절하게 담고 있다.
윤이상의 삶과 한반도의 운명
윤이상의 삶을 할퀴고 지나간 운명은 무대에서 그의 음악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온다.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에는 동백림 사건 때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힌 모습, 베를린 망명 시절에 자신이 떠나온 고향 통영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 유럽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거장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일들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윤이상의 역은 배우 최홍일,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의 역은 유화영이 맡아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헤쳐 온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 1958년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만난 백남준(왼쪽)과 윤이상 ⓒ프레시안 |
2007년 초연 당시 희곡을 쓴 홍창수 작가는 윤이상과 한국 정부의 정보기관원의 갈등적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데 비해, 2009년 작품은 윤이상과 이수자 부부의 삶과 사랑을 중심으로 연극이 시작한다. 하지만 냉전의 시대 북한을 방문한 윤이상의 행로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왜 윤이상은 북한 방문을 결심했을까? 작가는 그의 방문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간 친구를 만나는 동시에 평양의 강서고분도를 직접 보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인 것으로 묘사한다. 어쩌면 윤이상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북한에 갔는지도 모르지만, 이후 평생 동안 그는 북한에 치우쳤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군사정부의 초청을 거부했으며, 오랫동안 한국에서 윤이상의 이름은 '금기'가 되었다.
이 연극을 보는 사람은 윤이상의 모든 정치적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은 한 예술가의 고난에 찬 삶의 역경을 치밀하게 추적하면서 한반도의 비극적 운명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동시에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지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좌절은 윤이상에게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주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와 나눈 대화에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곡이라고 지적한 작품은 <첼로 협주곡>이었다. 왜 첼로일까? 첼로는 A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G#음의 한계를 넘어 A음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열정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이로 인해 '상처받은 용'처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 표현한 것이다.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넘어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이 결코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예술작품이 놀라운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디아'와 체코의 스메타나가 만든 '나의 조국'은 나라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윤이상도 휴전선에서 민족의 음악을 연주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꿈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대로 "한반도의 휴전선이란 우리 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것일 뿐 아니라 평화를 위협하는 인류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윤이상의 음악은 해마다 그의 고향 통영 땅에서 울려 퍼진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전 세계 음악인을 한 데 모아 평생 그가 보지 못한 통영 바다 앞에서 음악의 제전을 개최한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통영시가 추진했던 '윤이상 음악당'이 올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바뀌고 중앙정부에 요청한 500억원 지원예산도 거절당했다고 한다. 2006년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동백림사건이 정치적 목적으로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아직도 윤이상의 음악은 분단의 멍에 속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가 꿈 꾼대로 휴전선에서 그의 음악을 들을 날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이 연극을 쓴 홍창수 작가는 이 연극이 윤이상의 음악과 삶을 소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젊은 학생들에게 한국 현대사를 위한 좋은 교육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도 공감한다!)
작품명: 윤이상, 나비 이마주 작가: 홍창수 연출: 이동준 주최: 은세계 씨어터 컴퍼니 출연: 최홍일, 이병술, 강승민, 유화영, 고기혁, 김경환, 이선희 공연일시: 2009년 10월 22일-11월 18일 공연장소: 대학로 문화공간 엘림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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