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외고가 몇 곳인지 아느냐"라고 묻는다. 외고 옹호론자들의 주장대로, 외고가 외국어에 재능이 있는 소수 학생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면 다양한 외국어 강좌를 운영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특수 목적 고교'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의 언어를 가르치는 외고는 고작 두 곳에 불과하다. 영어, 독어, 일어 등을 제외한 다른 외국어 역시 사정은 같다.
'수월성 교육, 다양성 교육' 때문에 외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또 다른 맹점은, 일반 고교에서는 '수월성 교육, 다양성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이런 전제를 반박하는 손쉬운 방법은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이 바로 그런 예다. 핀란드 고등학교에는 학점 제도가 있다. 필수 과목을 제외하면,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학점을 빨리 이수하면, 조기 졸업도 가능하다. 학점을 충분히 이수하지 못하면, 그래서 고교 졸업자 수준에 걸맞은 학력에 도달하지 못하면 졸업이 늦춰진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굳이 특정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따로 뽑는 학교를 세울 필요가 없다. 요컨대 다양성, 수월성 교육이 아이들을 따로 뽑는 방식으로만 이뤄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고교 평준화를 유지하되,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택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핀란드 모델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이범 씨가 "굳이 외고를 설립하느니, 일반고교에서 외국어 강좌를 다양하게 개설하는 게 낫다. 4대강 사업에 쓸 돈을 교사 충원과 교실 확보에 쓰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렇게 보면 특수 목적 고교를 굳이 설립하는 게 오히려 '다양성 교육'에서 멀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아이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획일적 교육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굳이 특목고를 옹호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인 걸까. 이쯤에서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경쟁'이다. 잘난 아이들끼리 모아둬야 경쟁이 생긴다는 게다. 옆자리 아이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학력 신장의 원동력이라는 게다. 굳이 특목고 논란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비평준화 고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의 입장이 대개 이런 식이다.
이런 주장이 과연 옳을까. 역시 핀란드 교육이 좋은 반례가 된다. 국제 학력 평가에서 늘 1등을 차지하는 핀란드는 학교에서 경쟁을 배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협동을 장려한다. 서로 다른 재능과 가정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섞어서 팀을 구성한 뒤, 팀 단위로 협동해서 과제를 수행하는 수업이 일반적이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거의 모든 수업이 이런 식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경쟁이 꼭 학력 신장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물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을 하는 한국도 학력 수준은 높다. 국제 학력 평가에서 핀란드에 버금가는 결과를 낸다. 보통 2~3위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식 경쟁 교육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한국 학생들이 공부에 쏟는 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간을 많이 투여했으니, 결과가 잘 나오는 게 당연하다. 반면, 핀란드 학생들은 공부에 쏟는 시간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학력은 1위다.
공부 시간 대비 학업 성취도라는 '공부 효율성' 개념을 도입하면, 한국 교육과 핀란드 교육의 거리는 까마득해진다. 한국 학생들의 '공부 효율성'이 낮은 이유가, 한국 학생들이 유난히 머리가 나쁘기 때문일 리는 없다. 경쟁 교육이 그만큼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증명할 따름이다.
▲ <핀란드 교실 혁명>(후쿠다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비아북 펴냄). ⓒ프레시안 |
그런데 역자는 누굴까. 조금 의외다 싶다. 교사나 교육학자가 아니라, '사교육 1번지'라는 서울 강남구에서 활동하는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역자 소개를 보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 소장은 '공부 효율성' 전문가다. 즐겁게 공부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상담하고 지도하는 일을 해 왔다. 괴롭게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해서 낸 높은 성적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생각에 딱 들어맞는 사례가 핀란드 교육이었다.
<핀란드 교실 혁명>은 <경쟁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의 후속편쯤 된다. 저자인 후쿠타 세이지 교수는 핀란드 학교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해서 수업을 참관했다. 이를 꼼꼼하게 기록해서 낸 책이 <핀란드 교실 혁명>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수업 장면을 시시콜콜하게 소개하는 이 책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과 사회적 조건이 너무 달라서, 핀란드 교육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핀란드 교육이 평등과 다양성, 높은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달성한 이유가 꼭 학교 바깥 제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력한 노동조합과 좌파 정치 세력,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낸 탄탄한 사회복지로 인해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줄었다는 점을 빼놓고서는 '경쟁 없이 높은 성취도를 내는 교육'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요인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비슷한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해서, 꼭 핀란드 교육과 같은 성공 사례를 낳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핀란드 교육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교실 안에 있다. 역자인 박재원 소장은 한국 교육이 "이끌어 주겠다. 따라와라"라는 식이라면, 핀란드 교육은 "스스로 공부해라. 그러면 하나하나 맞춰주겠다"라는 식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자세히 묘사한 것도 이런 내용이다.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개념을 터득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반드시 서로 협동해야 한다. 팀의 다른 구성원을 따돌리고, 혼자서만 인정받으려드는 아이가 없도록 배려하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그렇게 해도 뒤처지는 아이가 있으면, 교사가 끝까지 책임지고 아이를 챙긴다. 핀란드에서 사교육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핀란드 교육이 최근 한국에 여러 방식으로 소개됐지만,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중요한 특징이 스스로 공부하기, 이른바 자기주도적 학습에 대한 굳은 신뢰다. 아이들이 스스로 개념을 터득하도록 돕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사교육을 줄이기는 어렵다. '떠먹여 주는 공부'에 대해서는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핀란드 교실 혁명>에서 묘사된 '공부 효율성'이 높은 수업 방식은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서도 충분히 높은 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아이들이 조금 처지는 것 같이 보여도 조급해하지 말자. 억지로 떠먹이는 공부보다는 조금 뒤처지는 공부가 길게 보면 아이에게 낫다. 이 책이 한국 어른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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