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지시다. 상황론으로 봐도 그렇고, 원칙론으로 봐도 그렇다.
외고 문제를 놓고 당과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 일각의 의지는 강력한데 교과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외고 폐지를 주창하는데 교과부는 외고 존속 또는 국제고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제탑 역할을 자임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정의 최종 책임을 청와대가 져야 한다는 원칙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견제'는 타당하지 않다.
이 신문이 보도했다. 청와대의 움직임을 '드라이'하게 전하면서 그에 대한 지적을 '꼼곰하게' 처리했다. "청와대의 개입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며 "불과 2년 전 외고 폐지 정책에 반대했고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엘리트 교육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정책의 근본 기조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도 나온다"고 했다. "하나의 친서민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한다. '조선일보'의 지적을, 조중동의 일관된 '외고 폐지 반대' 논조를 주목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청와대는 외고 문제를 가속 페달 삼아 친서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의 다음번 이슈 중 하나로 30-40대 학부모의 관심이 많은 외고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27일 한나라당이 '외고 문제 해결을 위해 연 토론회 모습 ⓒ뉴시스 |
헌데 보수 세력은 마뜩치 않다. '조선일보'가 전한 반대론의 구절들, 즉 "정책의 근본 기조"를 거론하고 "친서민 포퓰리즘"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세력은 외고 폐지를 정체성의 문제로 본다. 보수 정권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중과 영합하는 배신 행위로 간주한다.
보수 세력의 시각이 이렇다면 그들이 펼칠 행동은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당과 교과부를 오가며 전개된 지엽적 논란이었기에 점잖게 대응했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논란에 종지부를 찌고 정책방향을 결정하면, 그리고 그 방향이 외고 폐지면 날선 공격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곤란해진다. 이렇게 '집토끼'가 가출해버리면 '친서민'을 화승총 삼아 벌이던 '산토끼 사냥'이 공염불이 된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된다.
물론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양다리를 걸치는 방법이 남아 있다. '산토끼'도 잡고 '집토끼'도 다독이는 양면 전략, 즉 외고를 존속시키되 입시제도만 손보는 식의 방안, 또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식의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22일 전국 5490명을 대상으로 ARS조사한 결과를 봐도 여지는 있다. 응답자의 55.5%가 외고 전환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전환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특성화고(28.0%)-자율형·자립형사립고(23.3%)-일반 인문계고(22.2%)-국제고(21.6%)로 의견이 갈렸다. 보기 문항에 일부 문제(자율형 사립고는 추첨으로, 자립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도 한묶음으로 처리한 것)가 있지만 아무튼 갈렸다.
하지만 양다리 걸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뾰족수라고 생각했던 게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이미 막아버렸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그런 우회로에 바리케이드를 쳐버렸다. 외고 해법의 핵심은 학생을 시험이 아니라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쳐놓은 이 바리케이드를 타고 넘는다 해도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야당과 서민의 극렬한 반발이다. 외고 폐지의 대안은 일반고로의 전환이라면서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추첨 선발'을 최소한의 절충책으로 받아들여온 야당과 서민이 이명박 정부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외고 문제만이 아니라 친서민 정책 전반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여건이 그렇게 조성돼 있다. 상징성이 크고 민감성이 큰 외고 문제를 건드리는 순간, 그리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외고의 핵심 문제로 사교육을 부각시킨 순간 여건은 그렇게 조성됐다. 외고문제는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을 재는 가장 유효한 잣대가 돼 버렸다.
어쩔 것인가? 청와대는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갈림길에 선 청와대의 선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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