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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마지막 황금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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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식, 마지막 황금 밭이다"

[키워드 가이드를 만나다] '외식 산업' 전문가 이용석 씨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배경은 설렁탕 전문 외식 업체다. 그것도 주변 사람들이 눈독 들이는 '알짜' 기업이다. 과거 드라마에서 이른바 '잘 나가는' 집안이 주로 건설업, 물류업 종사자였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그리고 이는 한국 외식 산업의 가파른 성장을 보여준다.

먹는 일은 "생리적 욕구와 문화적 욕구가 공존하는" 행위다. 우연히 한 외식 업체와 인연을 맺은 뒤, 뒤늦게 관련 분야의 지식을 쌓고 한 길을 가고 있는 이용석 씨는 "비록 우리나라의 음식점이 포화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10년간은 계속 성장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구조다. 음식점 창업은 흔한 일이지만, 또 그만큼 문 닫는 가게를 보는 일도 일상이다. 이 씨는 이런 현상이 '소상공인 육성'이라는 정책 아래 과도하게 느슨해진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같이 성공하기'를 내세운 규제 완화는 역설적이게도 '같이 망하는' 길을 만들었다.

외식업 현장도 알고 대학에서 강의를 할 만큼 이론도 탄탄한 이용석 씨는 "환상을 심어주기보다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유독 관심을 보이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그야말로 '튼튼하고 안전한' 외식 업체를 만들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우연히 한 외식 업체와 인연을 맺은 뒤, 뒤늦게 관련 분야의 지식을 쌓고 한 길을 가고 있는 이용석 씨는 "비록 우리나라의 음식점이 포화 상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10년간은 계속 성장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시안

"음식점은 서비스업인 동시에 제조업…웃고 들어가 울고 나온다"

프레시안 : 지금은 대학에서 외식 산업과 관련해 수업도 하지만, 첫 외식업에 입문한 것은 배나무골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외식 산업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을 좀 들려 달라.

이용석 : 1980년대 초 대학에 들어가 질풍노도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졸업을 늦게 하게 됐다. 졸업 당시 나이가 이미 30대 후반이었다. 그때 지인이 배나무골을 소개했다. 사실 특별히 취직할 곳이 없어서 갔다. 비록 대학 때 농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때까지 먹는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한 끼 때우는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배나무골에 갔더니 그게 아니었다. 때우는 것이 아니라 폼 나게 식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고객이었다. 외식 산업의 잠재력을 그때 깨달았다.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2가지 욕구가 있다.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한 원초적인 욕구, 즉 생리적 욕구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생리적 욕구보다는 사회·문화적 욕구가 커진다. 밥을 먹기 위해서도 음식점에 가지만, 청혼을 하기 위해서, 가족과 모임을 하기 위해서, 비즈니스 때문에 식당에 간다.

음식점은 그런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끝없이 메뉴와 상품을 개발하고 문화적 장치들을 보완해 나간다. 그렇다면 외식 산업도 소비자의 사회·문화적 욕구 변화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배나무골에 일하면서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 뒤로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 : 외식 산업 전문가다.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외식 산업이 가지는 특징이 뭐가 있나?

이용석 : 큰 틀에서 보면 서비스업이다. 표준산업분류에서는 도소매업 내의 소분류로 숙박·음식업이 있다. 그런데 외식업은 다른 서비스업과 다른 특징이 있다. 제조업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게 들어가 있다. 쉽게 말해, 홀은 서비스 공간이지만 주방은 공장이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당연히 제조업에서 중요한 효율성도 필요하다. 고객이 요구하는 음식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적은 비용을 들여 만들어내는가가 핵심이다. 일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교묘하게 복합돼 있는 셈이다.

그래서 쉬워 보이지만 통제하고 조절해야 하는 요소도 많다. 다른 서비스업도 물론 손이 많이 가지만 음식점은 개업할 때 챙겨할 '체크 리스트'가 400가지도 넘는다. 직원 유니폼, 그릇, 주방 기구, 직원 교육 등등.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노동력 의존도도 높다. 갈수록 조리 장비도 자동화, 기계화되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쉽지 않은 업종이 음식업이다. 더디고 어렵다. 일본어는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오고 영어는 울고 들어가 웃고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음식업 창업은 그래서 웃고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쪽에 가깝다.

"창업 지원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 영세 소상공인 나락으로"

▲ "우리나라는 이미 음식점이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4000만 국민에 음식점이 60만 개 정도 된다. 대략 70명 당 음식점이 하나 있는 꼴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창업'을 결심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음식업이다. 외식 산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면?

이용석 : 첫째,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서울, 경기 지역에 1년에 평균 10만 개의 음식점이 새로 생긴다. 그 중 60%가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3년까지 살아남는 생존율이 10% 미만이다. 성공 확률이 그만큼 낮다. 두 번째로 생각보다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간다. 음식점은 자리가 중요한데 자리는 고스란히 비용이다. 권리금이 높거나 보증금, 월세가 비싸다.

또 하나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는 이미 음식점이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4000만 국민에 음식점이 60만 개 정도 된다. 대략 70명 당 음식점이 하나 있는 꼴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잠재 고객의 숫자가 적다. 반면 일본은 150명 당 1개, 미국은 350명 당 1개, 중국은 2000명 당 1개다. 우리가 제일 과포화 상태다.

외국에 비해 더 포화 상태인 이유는 진입 장벽이 너무 낮은 탓도 있다. 음식점은 위생과 안전이 중요한데 우리는 규제 장치를 다 없애 버렸다. 과거 산업자원부에서 소상공인 창업 활성화 정책이라고 해서 '10만 소상공인 양성'을 내세웠다. 창업 지원을 위해 규제를 대폭 풀어준 것이다. 이는 또 노동시장 유연화와 연결돼 있다.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 창업을 쉽게 해줘야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영세 소상공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 뿐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중산층 자영업자까지도 기반을 흔들고 깨뜨리는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결국 외식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할 확률을 높이는 꼴이 된다는 얘긴가?

이용석 : 그렇다.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사는 성공보다 있는 것 다 털어먹기 십상이다. 본격적인 외식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시작됐다.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뀌었다.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조리사 의무 고용 제도도 폐지됐다. 조리사 없이도 개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장소 선정도 별다른 규제 없이 주인과 계약만 하면 된다. 규제라는 것이 거의 없는 셈이다.

외국은 이 정도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한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음식점 숫자는 제한된다. 상주 인구에 비해 과다하다 싶으면 허가가 안 나온다. 중국도 개업하기 전에 각 성의 식품위생부에서 대단히 엄격한 심사를 한다. 특히 주방의 설계까지 챙긴다.

"위생과 조리사 고용 의무 등 일정한 규제 필요하다"

프레시안 : 김영삼 정부 못지않게 현 이명박 정부도 규제 완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식 산업을 더 성장시키기 위해 일정 정도의 규제나 규칙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용석 : 위생에 대한 규제다. 각 시 등에 존재하는 위생과에서 심사를 해야 한다.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허가를 내주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훈련된 조리사 고용 의무도 필요하다. 또 하나 자율적으로라도 일정한 지역의 입점 수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현실적으로 경쟁이 너무 치열한 조건을 인정하고, 메뉴나 위치를 빼고 보편적인 경영의 원칙 같은 것이 있다면? 잘 되는 음식점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다.

이용석 : 인력 문제가 역시 중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인적 자원의 힘이다. 사실 전체 음식점의 80% 이상은 생계형 점포고 20%가 기업형 점포다. 기업형 점포의 경우 일반 기업 못지 않게 전략적인 경영을 한다. 직원 교육도 하고 외국도 내보낸다. 그런데 물론 영세한 점포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주인이 고객 중심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 허가를 내주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훈련된 조리사 고용 의무도 필요하다. " ⓒ프레시안

"우리 외식 산업, 진정한 성숙기로 가려면 구조 변화가 우선"

프레시안 :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최근 관심이 높아졌다.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프랜차이즈 대표들이 청와대로 초청을 받기도 하고,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비빔밥 조리 공연인 '비밥 코리아'를 관람하기도 하는 등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의 성공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이용석 : 이른바 '에스닉푸드', 즉 그 민족의 고유 음식이 세계화된 사례는 많다. 미국은 워낙 다문화 사회다 보니 '또띠아'와 같은 멕시칸 음식이 유행을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종의 변형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본의 '스시'는 롤이 되어 대중화가 됐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물을 타서 '아메리카노'가 됐다.

한식도 장단점이 다 있다. 단점은 일단, 서양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곡물 요리가 너무 많고 마늘이 많이 들어간다. 또 음식 제공 방식이 시간전개형인 서양과 달리 한식은 공간전개형이다. 이런 핸디캡도 있지만 장점도 많다. 한식 뿐 아니라 동양 음식은 자연친화적이다. 한식은 영양적 균형성이 특히 뛰어나고 중독성이 강한 발효음식이 많다.

▲ "우리 외식 산업이 진정한 성숙기로 가려면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사실 세계 시장 진출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내부의 외식 산업이 어느 정도 포화 상태기 때문 아닌가?

이용석 : 우리 외식 산업이 아직 성장기인 것은 분명하다. 음식점이 60만 개, 종사하는 인구가 150만 명이다. 연간 부가가치 생산액은 약 50조 원이다. 그러나 여전히 매년 일정 비율씩 성장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은 이미 성숙기다. 우리나라 시장도 10년 안에 성숙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외식 산업이 진정한 성숙기로 가려면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보면 더 그렇다. 미국은 전체 외식업주의 50% 이상은 프렌차이즈로 돼 있다. 또 그 가운데 50%는 100대 외식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외식 산업 내에서도 규모화, 전문화, 기업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도 빠른 속도로 규모화가 시작됐다. 매출 1000억 원 넘는 기업이 등장하고 체인수가 1000개 넘는 기업도 생겨났다. 음식업 내의 기업 간 인수·합병도 활발하다. 향후 10년 동안 더 빠르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해외 시장까지 놓고 보면 잠재력이 더 굉장하다. 해외 식품 시장 규모가 1조 달러 정도라고 한다. 약 1300조 원이다. 그 중 외식의 비율이 선진국은 50% 이상이다. 혹자들은 한식이야 말로 아직 세계인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이지 않은 마지막 황금 밭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잠재력과 폭발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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