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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을 넘어선 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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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을 넘어선 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새 책〉농촌·노동현장·생활 속에 내재된 '차별'을 말하다

"사진은 현실이 집적된 세계를 수천 편의 글이나 말보다 더 잘 보여주는, 통역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보편적인 언어다."(세바스티앙 살가도)

진실을 보여주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줄기차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형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보여지는 진실의 내용은 무언가 비어 있다. 아직 인간은 완전한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사진집을 넘어선 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현실문화연구'가 제작한 책〈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수십 장의 사진이 들어 있어 언뜻 보면 '사진집' 같지만,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사진집'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들어 있다.

10명의 사진작가와 4명의 시인·소설가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사진으로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은 글로 채우고, 글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은 사진이 메우는 형식이다. 사진과 글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면서 '진실'을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

***'진실'='차별'**

그렇다면 이 책이 드러내려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 책을 만든 이들은 "차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의식이나 제도, 법의 틀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차별'의 모습을 사진과 글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은 쉽지 않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차별'의 흔적을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글에 담기 위해 이들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력투구 했다고 한다. 지난해 봄부터 초겨울까지 전국의 도시, 농촌, 어촌, 산간벽지, 노동현장을 훑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차별'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찾았고 영감을 얻었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도시민에게 잊혀진, 농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바다 건너 한국 남성에게 시집 온 동남아시아 여성들 △차별의 대명사가 돼버린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시설에 격리된 정신장애인 등의 모습을 담고 있다.

***농촌 소년소녀들은 왜 웃고 있을까?**

지난해 11월 정치권은 '쌀 비준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농민들은 '정부가 농촌을 버렸다'며 거리로 나서서 울부짖었다. 비준안 처리를 위해 수 개월 동안 펼쳐진 각종의 '정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도시민들의 암묵적 동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여러 이야기 중 '농촌 이야기'는 더욱 각별해 보인다. 아니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농촌이 버려질 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을 수십 장의 사진과 몇 토막의 글들이 사정없이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저어 오네에"(사진 성남훈, 글 공선옥)와 "촌아 울지마"(사진 이갑철, 글 공선옥)라고 이름 붙여진 장의 첫 번째 사진은 자지러지듯 웃고 있는 소녀와 수줍은 듯 웃음 짓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사진에는 장미꽃잎 한 장씩을 코 언저리에 붙인 채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는 두 명의 소녀가 담겨 있다. 세 번째 사진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은 빠지지 않는다.

사진작가 성남훈 씨는 '차별'을 이야기한다면서 왜 '웃음'을 담았을까? 그것도 아이들의 웃음을. 소설가 공선옥 씨가 그 답을 내놓는다.

"아이들은 쓴다. 배가 고파 찔레꽃 하얀 잎을 한 잎 두 잎 따 먹고서도, 찔레꽃을 따 먹어 배불렀다고. 아이들은 쓴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프게 울었던 날도, 더욱 더 힘차게 살아가겠다고. 아무리 삶이 곤궁해도, 아이들은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해 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그냥, 하늘과 바람과 달 같은 것에 '행복해 버린다'는 것을. 강원도의 아람이(사진에 등장하는 소녀 중 하나)나, 충청도의, 전라도의, 경상도의, 이 나라 농촌과 섬에 사는 수많은 아람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냥, 너무나 작은 것들을 가지고 행복해 해버리지 않고 진정으로 명실상부하게 행복해 할 날은 언제 올까."

공선옥의 답은 어쩌면 틀렸을 수 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소년 소녀들이 웃은 것은 말 그대로 재미있고, 즐거워서 웃었을 수 있다. 혹은 서울에서 왔다는 '사진작가 아저씨'가 너무 반가워서, 그가 들고 있는 크고 복잡해 보이는 사진기가 너무나 신기해서 웃었을지도 모른다.

***"이 야만의 구조는 언제 깨질까…"**

하지만 공선옥의 답은 '사실'이 아닐지는 몰라도 '진실'을 말한다. 아이들이 '그냥 웃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냥 웃었다'고는 쓸 수가 없었을 것 같다.

농촌에는 젊은 어른들이 없다. 노동능력을 상실해 가는 노인들과 그들의 손자·손녀들이 우리의 고향에 살고 있다. 아이들의 부모는 '돈 벌러' 도시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어른들이 없기 때문에 농촌은 갈수록 퇴락해 간다.

"부자 부모를 뒀든, 빈자 부모를 뒀든, 도회지든, 시골이든, 단지 그가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나라 어른들은 그들 모두를 보호해야만 할 책임이 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거 하나를 못 해주고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무슨 권력놀음, 무슨 돈놀음을 하겠다는 것인가."

각자의 행복이 각자의 행복이고, 각자의 불행은 끝없이 각자의 불행이 되는 '야만의 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 우리는 1년 후, 10년 후에도, 아니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양심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들의 웃음'을 봐야 할 것 같다.

***'조금 비싸다, 하지만…'**

이 책은 2만3000원이다.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이란 특징을 감안한다면 그리 비싸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농촌 소년소녀들, 할머니·할아버지들, 한국에 시집온 동남아시아 처녀들, 비정규직 노동자, 격리시설에 있는 '정신질환자'들이 이 책을 갖기에는 너무 비싸다.

어쩌면 이 책은 그들 손에 쥐어질 운명이 처음부터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책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차별'에 대해, '소외'에 대해 고민하길 바라는 마음이 기획자와 작가들 마음 속에 내재해 있었을지 모른다.

이 책을 기획할 때 참여한 인권위의 박미숙 씨는 "돈이 안 되는 책이다 보니 출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실문화연구〉에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차별을 말하기도 힘든데, 차별을 말하는 책을 내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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