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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과 싸우는 '과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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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과 싸우는 '과학자'입니다"

[화제의 책] 존 벡위드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최근 2008년 노벨상을 받은 일본의 과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69)를 만났다. 노벨상을 받은 직후부터 계속 만날 기회를 노렸는데, 거의 1년 만에 성사된 것이다.

마스카와는 '스타 과학자'다. 노벨상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노벨상을 받자마자 "노벨상 수상이 기쁘지 않다"고 말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노벨상 수상식에 참석하고자 여권을 처음 만들면서 화제가 되었다. 한국 방문은 그의 생애 두 번째 외국 여행이다.

노벨상 수상 강연도 남달랐다. "I can't speak English(나는 영어를 못합니다)"로 입을 뗀 뒤, 일본어로 강연을 진행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일본어로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영어를 못한다고 과학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고자 마스카와를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듣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이른바 '행동하는 과학자'로 꼽힌다. 그는 노동운동, 평화운동에 참여해왔으며, '일본의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 불인정'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 전문 9조를 지키는 '9조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마스카와는 자신이 이렇게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스승인 사카다 소이치(1911~1970)와의 만남을 들었다. 그는 스승을 이렇게 회고했다.

"사카다 소이치 선생님은 한 번도 제자에게 평화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져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평화'와 같은 가치를 과학을 지탱하는 기반으로 인식했고, 그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과학자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모라토리엄' 선언한 과학자

이런 마스카와의 얘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행동하는 과학자' 존 벡위드를 떠올렸다. 벡위드는 1969년 대장균에서 특정한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 최정상급 과학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그 중요한 순간에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런 유전자 조작이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튀는 행동의 대가는 컸다. 곧바로 벡위드는 '과학의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 하버드대학에 같이 몸담고 있던 과학자는 이렇게 물었다. "도데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한 겐가?" 그를 비판하는 많은 과학자는 "생물의 유전 정보를 훨씬 정교하게 조작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최소한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벡위드의 경고는 5년도 채 안 돼 현실이 되었다. 1973년 유전자를 조작해 자연에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나온 것이다(재조합 DNA). 놀란 과학자들은 뒤늦게 역사상 유례가 없는 행동을 취했다. 1973년~74년 제임스 왓슨, 폴 버그 등 '거물' 생명과학자 수십 명은 이 '재조합 DNA' 연구의 '모라토리엄'을 요구했다.

(많은 이들은 특정 연구가 초래할 '불확실한' 위험을 이유로, 과학자들 스스로 연구에 '모라토리엄'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는 데 놀랄 것이다. 이런 과학자들의 움직임은 두 차례에 걸쳐 <사이언스>(1973년 9월 21일자, 1974년 7월 26일자)에 실린 공개편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결국 1975년 2월에 열린 '아실로마 회의'로 이어졌다.)

1960년대가 만든 과학자

▲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존 벡위드 지음, 이영희·김동광·김명진 옮김, 그린비 펴냄). ⓒ프레시안
그 때 벡위드는 왜 그렇게 나섰을까? 최근 나온 벡위드의 자서전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이영희·김동광·김명진 옮김, 그린비 펴냄)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프랑수아 자코브가 얘기한 것처럼) "그가 어떻게 세계 최정상급 과학자가 되었고, 또 영향력 있는 사회운동가가 되었는지 솔직히 고백한다."

벡위드의 그런 행동의 배경에는 '세상을 바꾸려는' 1960년대의 열정이 녹아 있었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대학가를 강타했던 '대항문화'의 흐름 속에서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벼렸다. 그는 1960년대 미국,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를 휩쓴 변화를 향한 갈망과,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평화운동에 동참하면서 관찰자에서 행동가로 변했다.

벡위드가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의과 대학 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숫자를 늘리는데 앞장선 것이나, 하버드대 인근의 슬럼 재개발에 맞서 주민 편에서 싸운 것은 바로 이런 시대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사회운동을 과학자로서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1969년의 기자회견은 바로 이 두 가지 즉, 과학자의 삶과 운동가의 삶을 통합하는 계기였다. 벡위드는 과학이 사회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깨달았다. 그는 1970년 미국 미생물학회가 제약 업체 일라이릴리의 후원을 받아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제약 업체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상금을 급진적인 흑인해방운동을 펼쳤던 흑표범당에 기부했다.)

"우리(과학자)가 그런 종류의 연구에서 상당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것이니까요. (…) 그러나 나는 이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유혹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 연구가 사용되는 방식 때문에, 우리는 사회에 특별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에 맞서다

벡위드는 그 후 이른바 '급진 과학 운동'으로 불리는 흐름을 주도한다. 단체 이름부터 그 성격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은 그의 활동 근거지였다. 특히 그는 이때부터 "인간의 의미와 관계된" 질문을 다루는 과학의 위험을 폭로하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면, 사회생물학은 그의 주된 타깃이었다.

"역사는 인간의 사회적 삶의 양태를 설명하기 위한 유전학적 또는 진화론적 틀을 발전시키려 했던 시도들이 반복되어 왔음을 목격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분야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그 이론들이 자신들도 (…) 사회적 인간 존재에 다름 아닌 과학자들에 의해 구축된다는 피치 못할 혼란스러움은 여전히 남는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방향, 자료 해석의 방향, 그리고 결론의 방향을 물들이는 일련의 개인적인 가정들을 불가피하게 수반한다. 지능, 이타주의, 그리고 범죄성과 같은 인간의 사회적 특성과 행동들에 대한 정의 자체는 정의하는 자의 사회적 또는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이 인간의 의미와 관계된 질문들을 다룰 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정치적 장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벡위드의 충고는 뇌 과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의미에 대한 과학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지는 세태를 염두에 두면 더욱더 절실히 와 닿는다. 특히 그는 이런 문제를 놓고 과학자가 좀 더 목소리를 높일 것을 주장한다. 과학자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위험한 사회적 결과들을 초래할 수도 있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바로잡고자 노력할 의무"가 있다.

과학자라면 이 책부터 읽어라!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는 이밖에도 수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예를 들면, 과학자가 과연 연구와 운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하는 게 가능한가? 벡위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질 법한 이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은 벡위드를 평생 따라다녔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런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이 책은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과학자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고자 준비하는 과학자, 대학(원)생은 이 책에서 머리를 한 대 맞는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벡위드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가? 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 책을 읽고서 판단하라.

"나는 우리 과학자들이 하는 일을 사랑하며 이 점에서 과학이 뭔가 줄 것이 있다고 믿지만, 과학의 힘에 대해서는 덜 오만한 태도를 선호한다. 우리는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좀더 겸손해야 하며, 과학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과학을 사회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나의 과학 영웅인 프랑수아 자코브의 현명하게 절제된 표현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은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이 어느 정도의 지침을 제공하고 특정한 가설을 제외시킬 수는 있다. 과학의 추구에 관여하는 것은 우리가 실수를 덜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다.' 이 정도면 나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하다."


읽을거리

벡위드의 활동 근거지였던 '민중을 위한 과학' 등이 펼친 급진 과학 운동의 전개 과정을 알려면, 홍성욱의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문학과지성사 펴냄)의 3장이 도움이 된다.

196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이른바 '68 운동'의 전개 과정을 소개하는 책은 여러 권이 있다. 딱 한 권으로 68 운동을 알고자 하는 이라면 이성재의 <68운동>(책세상 펴냄)이나 잉그리트 길혀-홀타이의 <68운동>(정대성 옮김, 들녂 펴냄),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정대성 옮김, 창비 펴냄)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시대 속으로 빠지려면 타리크 알리의 책이 최고다. 그의 책은 두 권 중 어느 것을 읽어도 좋다. <1960년대 자서전>(안효상 지음, 책과함께 펴냄), <1968>(강정석·안찬수 옮김, 삼인 펴냄). (<1968>은 현재 절판 상태다.)

벡위드는 책 전체에 걸쳐서 찰스 퍼시 스노의 <두 문화>(오영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언급한다. 이 책의 12장은 <두 문화>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읽힐 만하다.

벡위드가 비판했던 사회생물학은 최근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는 진화심리학으로 이어졌다.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최근 쟁점을 한눈에 개괄하려면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김영사 펴냄)을 읽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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