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입법예고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관치금융을 심화시키고 구조조정을 늦출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일부 사례에서 국내 기업에 투자한 외국기업이 구조조정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도, 이번 개정령이 외국기업의 부담을 오히려 면제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PEF 규제 대폭 완화
이번에 예고된 개정령의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국내 사모투자펀드(PEF)가 국내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자산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회사에 대해서는 내년 말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는 회사 자산의 5% 이상을 국내 자산(증권,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외국회사에는 PEF의 투자가 금지돼 있다.
PEF가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자산의 절반 이상을 투자할 경우에는 특수목적회사(SPC)의 차입한도를 현행 200%에서 300%로 상향조정했다. 채무보증은 50% 이내(현행 금지)에서 허용키로 했다. PEF 자산 절반 이내 한도에서는 사회기반시설(SOC) 직접투자도 허용했다.
운용규제 완화에 발맞춰 금융권은 PEF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일찌감치 언론을 통해 PEF 설립 의사를 밝혔고, 대우증권ㆍ동양종금증권 등도 PEF 강화에 서두르고 있다. 대우증권은 이미 산업은행과 컨소시엄을 통해 'KDBㆍ대우증권그린퓨처사모투자전문회사'를 운용하고 있다.
당초 외국회사에 대한 PEF의 투자를 엄격히 제한한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투자구조 상 PEF가 외국회사에 투자할 경우 관치금융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지분을 5% 이상 가진 외국회사는 당연히 피투자 기업의 경영권에 영향력을 미칠 능력이 크다. 이런 외국회사에 PEF가 대량투자하게 되면 외국회사를 통한 PEF의 국내기업 통제가 가능해진다. 통상 PEF는 연기금 등 정부 운용자금이 상당부분 유입된 경영권 참여목적의 투자회사다. 결국 정부가 외국계 기업을 매개로 국내 기업 경영권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규제 완화, 관치금융 심화 우려
경제개혁연대가 이번 금융위의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국내기업에 투자한 대부분 외국계 회사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조세피난처 등에 터전을 둔 페이퍼 컴퍼니"라며 "PEF의 외국회사 투자 제한을 풀면 정부의 관치금융 우려가 커진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9개 대규모 기업집단(금호아시아나, 동부, 하이닉스, 대한전선, 유진, 대주, 애경, 동양, GM대우)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내기업 상당수의 주요 채권자인 산업은행은 기업구조조정PEF를 통해 이들 기업집단의 계열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산은은 물론, 국민연금 등 정부의 자본은 이들 구조조정 과정에 앞으로 더욱 깊숙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산은은 동부메탈 매각을 위한 PEF에 투자자로 참여할 예정이며, 두산그룹 구조조정에는 국민연금이 재무적 투자자로 관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연대는 "시장친화적인 기업구조조정을 내세운 기업구조조정PEF가 실은 시장을 표방한 관치금융일 뿐"이라며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PEF 시장에 산은을 통해 관치금융적 요소가 개입하는 것은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산은 민영화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며, 궁극적으로는 PEF 시장 자체 발전에도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PEF의 차입한도 규제를 완화한 개정령은 결국 부실기업의 기존부채를 새 부채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해, 구조조정 시기만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무적 투자자를 통해 계열사를 인수한 기업이 빚을 못 갚으니 또 다른 특수목적회사(SPC)를 끌어들여 그 빚을 갚는 것을 두고 구조조정으로 보면 곤란"하다며 "오히려 더 많은 빚을 끌어다 쓰게 돼 진정한 구조조정은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령은 금융감독법체계 자체를 뒤흔든 것이라 문제라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일부 개정령이 법률(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명시한 규제대상을 정면에서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위 법령(금감원 감독규정)이 상위 법령(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296조에 따르면 SPC 설립 가능한 차입수준은 200%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그 예외조항을 금융위 감독규정으로 넘겨버렸다. 법률에서 차입을 금지한 수준을 가볍게 넘어 서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과거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사례와 같다. 2003년 당시 은행법은 제16조 2항에서 산업자본이 4%를 초과하는 은행지분을 가지지 말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그 예외를 법률 시행령 제8조 2항에서 둬 론스타의 인수가 허용됐다. 이번 개정안도 이와 같은 사례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은행 관련 규정 중 가장 힘이 센 곳은 결국 법이나 시행령이 아니라 감독규정"이라며 "바로 이러한 위임입법 범위를 일탈하는 규정이야 말로 관치금융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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