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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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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천장"

[인권오름] "집에 관하여"

가난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는다. 1980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우리 집이 그토록 가난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돌아가신 다음 해에는 추석도 없었다. 다른 집들은 명절 준비로 붐비는데 엄마는 어두워진 후에야 들에서 돌아왔고 늦은 저녁을 먹은 후 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집은 서울로 이사를 했다.

나와 동생한테 이사는 오랜 꿈이었다. 가끔 이사 가는 친구들을 보며 엄마한테 "엄마, 우리도 이사 한 번 가보자"라고 조르면 엄마는 "그게 좋은 건 줄 아냐?"며 웃으셨는데 그 꿈은 갑자기 이뤄졌다. 1983년부터 우리 집은 1년에 한 번, 가끔은 6개월에 한 번씩 줄기차게 이사를 다녔다.

▲ 들일 가신 엄마에게 차가운 물을 떠갈 때 걸었던 고향 들판. 떠나고 싶어했던, 하지만 지금은 그리운 그 곳.

내가 떠나온 집들

나는 서울에 가면 마당에 수도가 있고 화단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첫 번째 집은 그런 예상과는 한참이나 먼 방 한 칸 딸린 가겟집이었다. 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강동구 성내동 어느 한 구석에서 우리는 화장실도 없이 살았다. 공사장 인부들이 쓰던 화장실에 들어가 보면 배설물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 외투를 입고 새우잠을 자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의 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두 번째 집은 중랑천 기찻길 옆에 있는 두 칸짜리 전셋집이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 모든 것이 고마운 법. 나는 그 집이 너무 좋았지만 두 번이나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뻔했다. 두 번 모두 내가 울음을 터뜨려서 식구들이 깨어났는데 그래서 식구들은 내 덕분에 살았다고 나를 추켜올리기도 했다. 어느 해에는 중랑천 물이 넘치도록 많은 비가 왔고 너무 많은 비를 하수관이 감당하지 못해 역류해버렸다. 새벽에 잠이 깨어보니 세간들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고 우리들은 잠이 덜 깬 채로 물을 펐다. 엄마의 자랑이었던 우리들의 상장이며 오빠의 문학잡지들이 더러운 물에 흠뻑 젖었고 햇볕에 말려보려 했으나 결국 내버려야 했다. 흙탕물을 치우고 세간들을 말리는 동안 잘 데가 없어서 나와 언니는 봉천동 친척집에 머물렀다. 거기가 어디였을까? 어두운 밤, 나는 언니와 함께 동산 같은 데 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별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였고 그 때 언니가 말했다.

"세상에 집들은 저렇게 많은데 왜 우리 집은 없는 걸까?"

집주인들은 6남매나 되는 우리 식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해마다 이사철이 되면 집주인들은 세를 올리거나 방을 비워달라고 했고 엄마는 신발이 닳도록 걸으며 집을 보러 다녔다. 어느 해에는 짐을 옮겼는데 장롱이 들어가지 않아 새로이 방을 구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옛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올 시간에 맞춰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 새 집으로 가기 위해 태릉시장을 가로지르며 오뎅과 튀김, 번데기 냄새에 침을 삼켰던 그 때.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기억된다.

▲ 먼 데서 보면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봉천동의 새벽 풍경. 어린 시절 언니와 내가 보았던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가난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언니와 자취를 시작했다. 선배언니도 나도 돈이 많지 않았기에 이사 때면 발품을 많이 팔았다. 나는 뒤늦게야 어린 시절, 우리를 위해 엄마가 겪어야했을 일들을 짐작했다. 부동산 중계업자들은 우리들이 가진 보증금을 함부로 비웃었다.

"그 돈 갖고 무슨 방을 구한다 그래?"

그들 중 몇몇은 선심이라도 쓰듯 몇 개의 방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물이 잘 나오나, 벽지에 곰팡이는 없나 살피고 있노라면 "그 돈으로는 이런 집도 감지덕지지" 하는 소리들을 하곤 했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은 그 돈에 맞는 방은 없다며 입을 닫았다. 아마 엄마도 그런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그 돈으로 무슨 방을 구하냐는 비웃음을 받았을 것이고 자식들은 왜 그렇게 많냐는 비아냥에 모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선배언니는 내게 말했다.

"방에 살림살이가 차 있으면 넓이를 못 보니까 천장을 봐야 해. 천장을 보면 방 넓이를 알거든. 알았지?"

그 때 나는 강남의 한 고3 학생에게 과외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방을 구하려 돌아다니다가 과외 집에 가서 보았던 천장. 그 애가 혼자 쓰던 그 방의 넓은 천장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지금 왜 이렇게 전세대란이 일어나는지를.(출처: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우리가 바라는 평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의 우리 동네를 안다. <봉천동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나왔었던 우리 동네는 밤에 멀리서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였다. 산을 일궈 들어선 집들은 산 모양 그대로 층층이 지어져있어 창을 열면 앞집 지붕이 보였다. 철거싸움을 벌일 때부터 봉천동에 살았던 남편은 이렇게 스산한 가을이면 문득 말하곤 한다.

"집이 너무 따뜻하다…"
새벽에 연탄을 갈아야했거나 실수로 연탄불을 꺼뜨린 날 새벽의 썰렁함을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대란이라고 한다. 며칠 전 전세대란에 관한 TV 보도물을 보다가 아기를 업고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어가는 젊은 엄마를 보는데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아기와 함께 있으면 기쁨도 두 배지만 슬픔이나 서러움도 두 배가 되는 걸 안다. 전세 값이 요즘 몇 달 새 다 1~2천만 원씩은 올랐다고 한다. 1년 안에 1~2천만 원씩을 모을 수 있는 집들이 많지는 않을 텐데 그들은 또 어디로 가야할까?

서울은 온 도시가 항상 공사 중이다. 불편하다. 미래를 위해 그 불편을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 미래가 과연 나의 것일까?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한강을 보러 갔는데 거기도 역시나 공사 중이었다. 일광욕장이 세워질 것이고 한 군데는 외국인 전용으로 운영될 거라는 남편의 말을 듣다가 "그럼 피부색 보고 사람들을 출입시키나?" 했더니 물끄러미 나를 보던 남편이 말해주었다.

"얼굴 보겠어? 돈을 보겠지"
사는 동네이름으로 그 사람의 경제적 수준을 가늠하는 세상. 뉴타운이니 희망서울이니 하는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제는 서울 전체를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가진 사람으로만 채우려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 뉴타운이라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제는 서울 전체를 부자로만 채우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용산 국민법정 기소인으로 참여한 시민이 1만 2천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용산에도 대학로에도 영등포에도 가난한 이들, 소수자라 불리는 이들이 사는 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다. 가난의 기억이든 투쟁의 기억이든 그것들은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준다.

대학에 입학하며 나는 착실히 공부하여 교사가 되려 했었다. 하지만 어떤 기억들이 내 삶의 경로를 바꿨다. 그렇게 경로를 수정한 수많은 사람들이 '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고 지금도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개발이 쉽게 저지되지는 않겠지만 가진 자들만의 세상 또한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가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나의 가족들, 그리고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섰던 사람들, 나는 그들 안의 선한 마음을 믿는다. 집이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삶의 보금자리가 되는 그 때,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그 때, 세상의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살 곳을 뺏기지 않을 그 때, 그 평화로는 세상은 천천히 그러나 언젠가는 꼭 올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은 "집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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