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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밀문서가 말하는 한국전쟁 당시의 집단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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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 기밀문서가 말하는 한국전쟁 당시의 집단학살"

한 지방지 기자의 집념의 결실…남북한군과 미군의 범죄 망라

1999년 9월 〈AP〉 통신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즉각적인 파문을 불러왔다. 진상조사 요구가 터져나온 건 물론이고 이 사건에서 우리 군과 미군이 한 역할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다. 이 사건을 보도한 〈AP〉 기자는 2000년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50여 년간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 숨죽여 왔던 수많은 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이 여전히 살아 있어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증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증언' 만으론 부족했다"**

2002년에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알게 해주는 주목할만한 책 한 권이 출판됐다. 〈부산일보〉 김기진 기자가 3년 여 동안 발로 뛰며 수집한 피해자의 '증언'들을 바탕으로 〈끝나지 않은 전쟁 : 국민보도연맹〉(역사비평사 펴냄)을 펴냈던 것이다.

이 책은 1949년 정부 주도로 창설됐다가 한국전쟁 때 우리 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집중 조명한 최초의 보고서였다. 전쟁 당시 학살된 보도연맹원은 20여만 명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심각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오직 '증언'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증언은 또다른 증언으로 인해 희석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있는 것. 피해자와 그들의 증언은 있지만, 증언보다 기록을 더 믿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김기진 기자는 증언을 보충해줄 '기록'을 찾는 작업에 나섰다. 국내 어디에서도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을 증명해줄 수 있는 '문서'를 찾지 못하던 그는 2003년 6월 미국으로 날아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뒤졌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의 사정이 기록된 문서는 눈에 띄는대로 수집했다. 모두 6000여 장에 달하는 문서기록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2년 만의 쾌거였다.

***미국 기밀문서가 말하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범죄의 진상**

김 기자는 그렇게 수집한 문서기록들을 바탕으로 최근 〈한국전쟁과 집단학살 : 미국 기밀문서의 최초증언〉(푸른역사 펴냄)을 출간했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책은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났다고 '증언'돼 온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미국 기밀문서의 내용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이제 '증언'과 '기록문서'가 변주되면서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됐다. 먼저 1장은 우리 정부에 의한 학살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형무소 내 집단학살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학살 등이 담겨 있다.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은 기존의 각종 '증언'과 '연구', '발굴작업' 등을 통해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난 것들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한국전쟁 때 발생한 각종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미국은 우리 정부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는 점이 각종 문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보도연맹의 창설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보도연맹의 문제점에 대한 국내의 비판 등에 대해 기술한 주한 미 대사관의 보고서는 한 예에 불과하다.

"고문과 영장 없는 체포행위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의 개선을 약속하는 공식 성명이 나오고 있다. … 반공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두려움을 느낀 국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반발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 한국의 공안당국은 지난 수 개월 동안 치안과 반공을 빌미로 정의를 유린해 왔다. 보수언론인 동아일보까지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1949년 주한 미 대사관의 9월 정치동향보고서 중)

이뿐만이 아니라 미국 CIC의 전투일지 및 활동보고서, 미 병참사령부의 통신문 등은 대전, 충남 서산, 충북 단양, 제주, 경북 의성, 경북 김천, 경남 마산, 인천 등지에서 있었던 우리 군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이 움직이지 없는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군, 민간인 학살 제지하기도 했지만…**

또한 암암리에, 때로는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학살을 목격한 외국군대가 전쟁 참여에 회의를 품거나 우리 군의 학살을 제지했던 사실도 이 기밀문서는 확인해준다. 대표적으로 1950년 12월 15일 서울 북방 홍제리에서 형무소 경비병들이 재소자를 집단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영국군이 한 행동을 들 수 있다.

경비병들이 재소자들을 구덩이에 밀어넣고 총을 쏘아대는 장면을 목격한 영군군은 "도대체 우리가 한국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뭐야"라며 경비병들을 제지하고, 이를 거부한 경비병들을 무장해제시킨 사실을 국제적십자 단원 비에리가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전달한 항의서한과 UN 사령부 통신문은 적시하고 있다.

***증언에는 없던 북한 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들**

한편 이 책은 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우리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록도 담고 있다. '증언'과 '발굴'만으로는 온전히 드러내기 힘든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사건의 전모가 '기록문서'를 통해 보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50년 11월과 12월 경 주한 미 대사관에 보내진 미8군 사령부의 보고서들을 보면 황해도 사리원, 신막 등지에서 이뤄진 우리 군의 민간인 학살이 '공산주의자 사냥'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평양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불법처형은 국제적십자 단원 레이니어의 통신문에서 드러난다.

***미군도 민간인 학살에 참여…한국전쟁 당시 네이팜탄 3만여 톤 사용**

한편 2장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뿐만 아니라 미군도 '작전 상'의 이유로 민간인을 대량 살해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특히 주변 지역을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으로 악명 높은 네이팜탄이 한국전쟁 당시 3만2000여 톤이나 사용됐음이 폭로된다.

미국의 고급장교 양성기관인 국립전쟁대학의 기밀문서는 1950년 12월 말에서 1951년 1월 말 사이에 강원·충북·경북 일원에서 이뤄진 '싹쓸이 작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1951년 1월 미 10군단에 특별임무가 주어졌다. 그것은 당시 10군단 후방지역인 강원도 영월과 충북 단양, 경북 예천 지역에 있는 인민군을 완전 소탕하라는 것이었다. … 싹쓸이 작전에는 지상기지는 물론 항공모함에 있던 전투기까지 동원됐고 그 결과 강원도 영월에서만 4440명을 소탕했다.

이 수치는 시신을 직접 세어 산출한 것이다. 또 충북 단양과 경북 예천 사이에 있던 인민군 7000명을 싹쓸이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75%를 불태웠다. 싹쓸이 작전이 이처럼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네이팜탄을 사용한 덕분이었다."(1951년 1월 25일자 국립전쟁대학 기밀문서)

***"북한군의 민간인 학살 기록은 풍부하고 체계적이더라"**

3장은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담고 있다. 이 장은 1950년 10월 미 8군 사령부 법무감 산하에 구성된 '전쟁범죄단'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로 간주할 수 있는 사건들을 조사해 만든 보고서의 요약본을 싣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북한이 저지른 학살사건에 대한 기록은 양적으로 매우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내용도 체계적이다. 사진을 비롯한 모든 기록이 공개돼 있고 각종 통계수치에서 학살지도까지 가미된 종합보고서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이어 "전범단 보고서에는 한국정부나 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기록은 없다"며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과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이 왜 피해자의 '증언'으로만 전해졌는지 그 실마리를 알 수 있게 했다.

마지막 4장은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을 '증명'할 수 있는 미국 기밀문서 원문을 수록했다.

***"과거사 위원회의 진상규명 작업에 큰 도움 될 듯"**

이 책은 지난달 1일 출범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이하 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활동에 주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과거사위원회는 해방 이후부터 노태우 정권 때까지 있었던 국가에 의한 범죄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도 진상조사 대상 목록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미국의 기밀문서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 돌이킬 수 없는 '진실'임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 기밀문서의 기록은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 군과 미군의 학살 사건을 증언해줄 수 있는 피해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사망하고 있고, 발굴 현장이 각종 개발로 인해 소실되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과거사 정리 사업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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