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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모르고 먹었던 그 약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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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모르고 먹었던 그 약은 바로…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자하거의 효능

태반은 임산부의 자궁 안에서 태아와 모체 사이의 영양 공급, 호흡, 배설을 주도하는 조직이다. 고대에는 태반을 인간이 최초로 몸에 걸치는 가장 좋은 옷이라고 여겨 신선의(神仙衣)라고 불렀고, 부처가 입는 옷이라고 불가사(佛袈裟)라고도 불렀다. 한약재로 쓰이는 태반의 정식 명칭은 자하거(紫河車)다.

자(紫)색은 일종의 보라색으로 붉은색과 검은색의 혼합이다. 검은색은 생명 이전의 세계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태어난 이후의 세계를 상징한다. 보라색은 바로 이 두 세계의 경계를 상징한다. 자궁을 세상과 잇는 경계라고 할 수 있는 태반을 상징하는 색을 보라색으로 본 것이다.

예로부터 태반에는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태반을 약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정작 한의학에서 이를 약재로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본초강목>은 태반을 약재로 사용하는 것을 놓고 현실과 (유학) 이념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유구국(오키나와)에서는 부인이 출산하면 반드시 태반을 먹는다. (…) 광서성 만(蠻)족은 남자를 생산하면 친족이 모여서 태반을 먹는다. (…)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면 이런 오랑캐와 다를 게 뭔가."

▲ 임신 13주차 태아의 모습. ⓒ프레시안
그러나 현실이 이념을 이겼다. 유학 이념이 득세했던 조선 시대에서도 태반을 복용한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기묘사화 등을 거치면서 심하게 앓는다. 이런 중종에게 어의가 처방한 약재가 바로 태반이다. 이들은 중종에게 이렇게 사후 보고한다.

"상의 건강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처음 편찮으셨을 때, 자하거(태반)라는 약을 처방했습니다. 이 약은 신통, 영험한 약이나 환자가 알지 못하게 먹여야 한다는 방문에 따라서 별도로 처방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유학 이념이 득세했던 명나라 때, <본초강목>을 쓴 이시진이 태반을 약재로 사용하는 것을 망설였다면, 청나라 때는 태반이 '천하의 명약'으로 널리 알려졌다. 청대의 비방을 보면 '보천하거대조환'이라는 처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태반을 약재로 사용한 것이다.

이 처방은 몸이 허약해져 사지에 힘이 빠지면 원기를 보충하고자 태반을 넣은 약재를 복용하도록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의학에서도 태반을 인삼, 녹용을 능가하는 대단한 약재로 규정한 것이다. 허준 역시 <동의보감>에서 태반의 여러 가지 약효를 기록해 이런 흐름에 동참한다.

<동의보감>을 보면 태반의 여러 가지 약효가 나온다. 우선 남성의 성 기능 장애, 여성의 불임 치료에 태반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현대 약학에서도 태반의 성분이 성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런 기록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동의보감>은 더 나아가 결핵, 천식과 같은 질환이나 혹은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정한 심신을 다스리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동의보감>의 기록을 포괄하는 태반의 약효는 바로 면역력 향상이다. 아기와 모체를 잇는 태반의 기능을 고려하면, 이런 약효를 짐작할 수 있다.

태반은 여러 가지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우선 태반은 모체의 몸속에서 태아를 이물질로 여겨 면역 작용을 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또 태아의 세포가 모체로 침투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또 모체의 몸에서 태아의 몸으로 각종 바이러스, 세균이 들어가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태반이다 보니,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저항성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물질이 포함된 태반을 복용하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태반의 약효는 생명의 신비를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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