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인 민주당이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지난 한해에만 51조 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한 이명박 정부를 질타하는 발언이 아니다. 지난 2006년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비난하는 국회 연설의 일부다.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재정적자'는 주로 한나라당의 공격 수단이었다. 국가재정은 사회복지와 직결된 문제이고, 복지예산을 늘리면 재정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공식이 깨졌다.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를 공식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현 정부 들어 급증한 재정적자는 더 모순이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그 원인을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불, 7대 경제대국) 공약에서 찾았다. '작은 정부'와 '높은 경제성장률' 중에서 경제성장률을 선택했고, 그 결과 엄청난 재정적자를 기록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민생민주국민회의와 시민주권이 주최한 '2010년 예산안 대토론회' 발표문에서 "이명박 정부 2년간 재정적자의 대 GDP 비율은 평균 3.3%로 노무현 정부 5년간의 평균 0.4%의 8.3배에 이른다"며 "전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재정건전성 악화를 그토록 비판하고 집권한 한나라당 정권하에서 재정수지가 더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MB정부, '작은정부'가 아니라 '적자정부'
▲ 이명박 정부 첫해 대대적인 감세정책은 재정적자를 야기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이자 현 대통령 경제특보인 강만수 특보는 감세정책의 상징이다. ⓒ뉴시스 |
이명박 정부가 1년 전에 발표한 '2008-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747공약과 재정위기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뒤에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2012년 경제성장률을 7%로 잡고 있다. 이런 '고성장률에 대한 집착'이 낳은 결과는 노무현 정부의 8.3배에 달하는 재정적자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2009-13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을 보면 1년 사이에 확 달라진 정부의 경제전망을 엿볼 수 있다. 2009년에서 2012년까지 실질경제성장률을 5.0-6.8%로 예측하고 있는 1년 전의 계획과 달리 2009년-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실질경제성장률을 -1.5%-5.0%로 잡고 있다. 1년 사이에 실질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크게는 6.5%포인트나 달라진 것이다.
황 교수는 "2008-12 재정운용계획 상의 경제전망은 747공약에 얽매여서 매우 비현실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 계획은 설령 경제위기를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잠재성장률 수준에 비춰 전혀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09-13년 계획을 통해 정부가 747이라는 비현실적 공약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전망상의 오류가 아니라 이 전망에 입각해 각종 거시, 조세, 재정정책이 수행됐으므로 당연히 심각한 정책실패의 문제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무리한 전망제시와 그에 따른 정책실패에 대해 정부에서 누군가가 책임져야할 문제"라며 "그냥 슬쩍 넘어갈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747공약 슬그머니 폐기…껍데기만 남은 감세정책과 작은 정부론
황 교수는 또 이명박 정부가 여전히 감세정책과 작은 정부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집권 2년간 재정운용의 실패로 인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적자로 감세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여지가 없어졌다는 것.
이명박 정부는 08-12년 계획에서 2012년의 조세부담률 목표를 20.8%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의 22.7%보다 1.9%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09-13년 계획에서는 최종연도인 2013년의 조세부담률 목표는 2007년에 비해 0.2%포인트 낮추는 것으로 잡고 있다.
황 교수는 "감세정책의 강도가 크게 완화돼 실질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껍데기'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변화는 정부가 어느 정도 현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세부담률이 OECD국가 평균(26.9%)에 비해 5.9%포인트나 낮은 한국 상황에서 '작은 정부'와 '감세'는 처음부터 잘못된 목표였다는 얘기다.
황 교수는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하면서 감세정책을 표방했지만 실제 2007년과 2013년의 조세부담률은 거의 변화가 없으면서 그 기간에 재정적자만 키운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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