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자신의 대선출마설과 관련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것도 여야 국회의원들 앞에서다. 반 총장은 9일 저녁 뉴욕을 방문중인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위원 8명과 만찬을 함께 하면서 "국내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앞으로 (대선에) 출마도 하지 않을 것이고,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제발 더 이상 정치권과 관련해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민주당 박주선 의원이 전했다.
사실 반 총장의 이 같은 입장은 오래 전에 정해져 있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반 총장은 최근 사적인 자리에서 "국내 정치는 국내 정치인들의 몫이다. 나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내 직무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5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정진석 의원은 "한달 전쯤 워싱턴에서 반 총장을 만났는데 대선출마설에 대해 무척 곤혹스러워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한바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온 것은 자신의 불출마 발언이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반 총장의 한 측근은 "대선 출마를 안한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빌미가 돼 일을 크게 만들지 않겠느냐"며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지 않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이 이번에 정치권을 통한 입장 공개쪽으로 선회한 것은 자신의 차기 대선 출마를 둘러싼 정치권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유엔 사무총장 직무수행에도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올초 일부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이 반 총장을 잠룡군에 넣어 조사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커지기 시작한 반 총장 대권설은 최근 한 야당 의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반 총장 야당 후보론을 제기하면서 한층 가열돼 왔다.
실제로 반 총장은 만찬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 언론들이 나를 국내 정치와 관련해 보도하는 내용이 거의 리얼타임으로 이곳에 전파되면서 유엔에서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그런 보도들이 사무총장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고 악용되기도 했다"고 말한 것으로 한 참석의원이 전했다.
특히 최근 서방 일부 언론에서 반 총장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자주 나오고 있고, 차기 총장을 꿈꾸는 경쟁자측에서 "반 총장은 사무총장보다는 차기 한국 대통령에 더 뜻이 있다"는 취지로 말을 퍼뜨리면서 임기가 갓 절반을 지난 시점에서 `반 총장 흔들기'를 위한 시도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점이 반 총장의 결심을 재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만찬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반 총장의 3시간에 걸친 호소에 모두 공감했다고 한다.
한 참석 의원은 "반 총장의 언급은 제발 나를 국내 정치로 얽매이게 하지 말고 국제 무대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 기록되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였다"면서 "반 총장이 성공한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야를 떠나 모두 의견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한 측근은 "국내정치에 반 총장을 끌어들이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밑지면 손해"라면서 "아무리 국내에서 말이 나돌아도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말이 나옴으로써 유엔에서는 향후 임기 2년을 남기고 레임덕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엄청난 손해가 아니냐"고 강조했다.
연임을 하지 않고 앞으로 2년만 있으면 떠나게 될 총장의 개혁 정책이나, 큰 어젠다들을 누가 뒷받침하겠느냐는 것이다.
반 총장의 성공적 업무 수행이 주요한 직무 가운데 하나인 박인국 유엔 대사는 "앞으로 한국 언론에서 대선 관련 여론조사 등에 반 총장을 포함시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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