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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터지도록 먹는 건 인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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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배가 터지도록 먹는 건 인간뿐입니다"

[인터뷰]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펴낸 소설가 조정래

작가 조정래는 단단한 사람이다. 문인하면 떠오르는 허랑방탕한 기질이 없다. 보성고 시절에는 역도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술도 즐기지 않는다. 집필을 할 때는 일정표를 벽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목표량을 점검한다. 시간 약속도 철저히 지킨다. '5분 먼저' 도착하는 버릇이 몸에 배 있다. 그뿐인가. 글을 쓰거나 읽을 때, 50분마다 10분씩 쉬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하루 세 번 맨손체조를 빠뜨린 적이 없다.

▲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원고 뭉치. 가운데는 작가의 손자. ⓒ시사IN북
사실 당연한 일이다. 단단하지 않으면, 원고지 5만 장이 넘는 현대사 3부작(<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써내기란 불가능했다.

그의 출세작 <태백산맥> 역시 단단한 몸으로 시대와 부딪혔던 이들의 이야기다. 빨치산 전사, 농부, 무당, 군인, 경찰…. <태백산맥> 주인공들 가운데 푸석한 얼굴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는 없다.

"몸으로 쓴 글"이라서 그렇다. 예순여섯 나이에도 사십대 초반의 체력을 갖고 있다는 그가 사십년 글감옥에서 지낸 이야기를 쏟아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시사IN북 펴냄)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가 열린 6일 오전의 일이다.

"제 소설에도 연애 이야기가 나와요. '인간 회복'을 위한 글이니까요"

"'신문에 연애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게 제 원칙인데,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건 제가 젊었을 때 내린 실존적 결단인데, 그렇다고 제가 소설에서 연애 이야기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죠. 다만 연애소설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이 연애만 하고 사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연애가 삶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죠. 당장 <태백산맥>만 봐도, 도입부에 정하섭과 소화가 연애하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저는 소설에서 빨치산의 인간 회복을 시도했어요. 빨갱이라고만 그려졌던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거. 그들도 연애를, 야한 연애를 한다는 거. 그걸 담아내는 게 인간 회복이라고 본 거죠. 사회학 논문이라면, '빨치산이 인간이다'라고 쓰고서 그걸 입증하면 되겠죠. 하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잖아요. 독자가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죠. <태백산맥>이 처음 출간됐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사회적 충격이 대단했죠."

▲ <황홀한 글감옥>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 참가한 조정래 작가. ⓒ시사IN북

"우선 토벌대원부터 만났죠. 결과는 성공"

'사람'에 대한 끈끈하고 맛깔스런 묘사. 그것이 <태백산맥>을 빨치산을 다룬 다른 소설보다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발품 팔기. 치열한 취재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자전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에는 전두환 정권 시절 빨치산 출신을 찾아다녔던 사연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태백산맥>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45년 해방부터 1953년 휴전까지 8년 동안을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 '해방 공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중략)…그럼 그 전에는 아무 명칭이 없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 역사학자들은 많았지만 그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 그가 몸으로 더듬어 간 것은 이름이 없는 시대, 아무도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시대였다. 그 시대를 뜨겁게 살았으되, 이름이 지워져버린 이들에 이름을 붙여주는 게 그의 작업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빨치산 출신을 만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았다.

"궁리궁리한 끝에 저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소설 무대가 될 지역에서 당시의 토벌대원을 만나는 방법이었습니다. 경찰서의 힘을 빌리면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그들을 취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빨치산의 실태가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계획은 적중했습니다."

"못 배웠다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줄 아세요"

▲ 고(故)박현채 선생과 함께 지리산에 올라 찍은 사진. 박현채 선생은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소년전사 조원제의 실제 모델이다. ⓒ프레시안
빨치산이 사람인 것처럼 토벌대원 역시 사람이었다.

"열에 아홉은 불쌍한 농민이었어요. 우리가 토벌을 하면서도 가슴 아팠지요."

"농부들이 아무 것도 모르면서 휩쓸렸다고 말하는 건 안 되지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무슨 장난인가요? 소작인이 학교 공부 못 배웠다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줄 아세요?"

전직 토벌대원이 했다는 말이다.

그저 순박하기만 해서, 이념이 뭔지 몰라서 선동에 휩쓸린 불쌍한 농민이라는 지식인들의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못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순투성이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뜻을 품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때는 모두에게 낯설었다. 그리고 전직 빨치산에게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조심스럽게 빨치산 출신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토벌대원을 만나는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잘못 찾아왔소.' '그 사람 진작 죽었소.' '아무 것도 모르오.' '어서 가시오. 누구 또 죽이려고.' 그 사람들한테서는 단 한 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파삭 늙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사람으로서 기가 다 빠져버렸고, 새로 닥칠 두려움에 떨면서 아무 말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까스로 목숨이 붙어 숨 쉬는 미라였고, 인간 화석이었습니다."

'숨 쉬는 미라', '인간 화석'로 지내는 이들이 한때 정하섭과 소화처럼 연애도 했다는 것, 그걸 드러내는 게 그가 생각하는 빨치산의 인간 회복이다. 이런 작업은 성공했다.

"노력하라는 말,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줄 안다. 그래도 그 말은 옳다"

▲ <황홀한 글감옥>(조정래 지음, 시사IN북 펴냄) ⓒ프레시안
그는 이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았으므로 삶이 황홀하다고 했다. 능력 이상의 대접을 받았다고도 했다.

"요즘은 부모에게 유산을 물려받아 기반을 잡는 비율이 20%쯤 된다고 하던데, 우리 때는 0.2%도 안 됐어요. 다들 가난했죠. 그런데 그 가난이 제 스승이었어요."

가난을 딛고 황홀한 삶을 살아냈다, 라고 하면 하품부터 할 사람이 많다.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는 굳이 말하겠다고 했다.

"모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노력을 바쳤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충고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고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긴 인간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젊은이들에게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아들 내외에게 책을 베껴 쓰게 했는데, 그것도 성실한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돼지도 배를 70%만 채워요"

그가 강조한 성실한 노력은, 뒤집어 말하면 절제다. 탐욕을 누르지 않고서는 따박따박 원고지를 메워가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 보성고등학교 역도부 시절의 작가 조정래. 당시 가슴 둘레가 1미터였다고 한다. ⓒ시사IN북
"몸이 건강해야 글을 쓸 수 있죠. 그런데 건강을 유지하려면, 탐욕, 특히 식탐을 절제해야 해요. 인간만 배가 터지도록 먹는데요. 돼지도 배가 70%쯤 차면 식사를 멈춘다고 합니다. 오직 인간만 식탐을 누르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는 배탈 나서 고생하고요.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저는 절대로 배부르게 먹지 않습니다. 몸에서 치고 올라오는 탐욕을 누른다는 것, 저는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봐요."

이런 충고 역시 젊은이들을 향한 것이다. 그의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자체가 젊은이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졌다. <시사IN> 인턴기자 희망자들이 그에게 보낸 500여 가지의 질문 가운데 84가지의 질문을 골라 대답하는 형식이다. 성실하고 단단한 작가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이라면, 펼쳐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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