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의 화법이 그렇다. 사안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믿어 달라"고 읊조리는 그의 언행이 그렇다.
▲지난 3일 용산참사 유족을 찾아가 "저도 어릴 때 어렵게 살아 서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저를 믿고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9월 18일 충청 출신 명사 모임인 '백소회'에 참석해 "제가 충청도 출신이고, 충청도 출신인 것을 일생동안 자랑하면서 살았다"며 "(세종시 문제에 대해) 가장 좋은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 믿어 달라"고 했으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총리가 되기 위해 학자 시절의 소신을 꺾은 것 아니냐"고 공격하자 "저는 어린애가 아니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쓸 것임을 믿어 달라"고 했다.
얼핏 보면 낮게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정운찬 총리가 낮은 자세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되뇌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자세히 보면 우뚝 서 있다. '대표'로 '대변자'로 꼿꼿이 서 있다. 국민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았는데도 본인이 자신의 지위를 임의로 설정하고 있다.
▲ 정운찬 총리가 3일 용산참사 유가족을 만나고 있다. ⓒ용산범대위 |
'나는 서민 출신이니까 서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나는 충청 출신이니까 충청인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나는 (뛰어난) 학자 출신이니까 현실까지 잘 아는' 존재라는 그의 논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로 내가 내놓는 정책엔 진정성과 과학성이 가득 담겨 있고 믿어야 한다는 그의 암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넘길 수 있다. '자임'의 도가 지나치다 싶지만 그냥 넘길 수 있다. 서민과 충청인과 현실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좋게 해석할 수 있다.
헌데 아니다. 내놓는 정책이 영 가깝지 않다. 서민의 아픔을 담아내지 못하고, 충청인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한다. 용산 참사에 대해 중앙정부가 할 일은 없으니 지방정부에 가서 알아보라고 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안 되니 과천이나 송도 같은 모델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한다. 기실 아무 것도 내놓지 않은 채 '왕년의' 연줄에 기대 무조건 양보를 요구한다.
어쩔 수가 없다. 정운찬 총리의 "믿어 달라"는 호소는 '나를 따르라'는 강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내놓은 정책이 그나마 서민과 충청인의 아픔과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니까 그렇다. 최대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소치마저 잡을 수 없을지 모르니까, 다시 말해 '국물'도 없을지 모르니까 그렇다.
※말하다 보니 생각난다. 정운찬 총리보다 22년 앞서서 "믿어 달라"고 선창한 사람이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87년 대선 때 그가 그랬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며, 자신 또한 '보통사람'이라며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를 연발했다. 대선 유세차 경향 각지를 돌며 그렇게 호소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3당 야합으로 민주화 물결이 짜놓은 여소야대 구도를 일거에 무너뜨렸고, 자신의 중간평가 공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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