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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착한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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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착한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공연리뷰&프리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

누구나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 한다. 꾸준히 할부금을 갚아나가고 적금을 든다. 수시로 눈알을 굴리며 주위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이처럼 세상의 기준에 맞춰 착실하게 사는 것 같아도 마음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전진하는 생활 속에서 가끔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이를테면 정이나 측은지심 같은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라는 단어 같은 것.

▲ ⓒ프레시안

- 우리가 평화로운 마음을 습격하는 이유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남자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가 심장을 요구하자 남자의 어머니는 죽을 때가 된 자신의 심장을 꺼내다 주라고 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 무언가에 쫓기듯 뛰어가다 넘어진다. 들고 있던 심장이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다 멈춘다. 그러더니 '얘야, 다친 곳은 없니? 위험하니 뛰어가지 말고 걸어가거라'고 말했다는,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기도 하는 이야기다. 자식의 가슴 속에는 칼이 들어있다더니 말 그대로 부모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는 게 자식이다. 여기,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에도 그와 비슷한 자식들이 나온다. 그들은 손에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심장을 꺼낸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이 평화롭던 오아시스세탁소를 습격한 이유는 어머니가 남겨둔 유산이 이 세탁소에 있다는 출처모를 정보에 의해서다. 우리의 평화로운 마음을 습격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안절부절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드는가.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잃어버리고 유산만을 찾기 위해 안간힘쓰는 마음들이다.

- 정신 차리기에는 너무 복잡해져버린 세상

세상 한 귀퉁이, 작은 보금자리 만들어놓고 티 나지 않는 곳의 얼룩을 지우며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강태국이 있다. 유순하지만 소신 있는 강태국은 들이닥친 이 '자식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소란을 피워대니 시끄러워 정신없고, 저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느라 정신없고, 결국 원하는 것이 죽어가는 노모의 남은 재산인가 싶어 정신없다. 우리도 정신없다. 저것들이 시끄러워 정신없고,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정신없고, 강태국이 답답해 정신없고, 결국 그들이 '나'임에 또 한 번 정신이 없다. 정신없는 세상에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잊고 지냈던 것들을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정신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유학 보내달라며 당연하듯 주장하는 딸과, 딸의 말을 듣고 이런 세탁소의 자부심 따위 금세 버릴 수 있을 듯 한탄하는 아내까지 유산을 찾기 위해 안달 났다. '쪽팔려서' 학교 못 다니겠다는 딸을 보며 '저런 불효막심한 놈'이라 소리치고 싶지만,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수시로 상승하는 혈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딸을 보며 웃고 있으면 괜히 낯 뜨거워 진다. 어쩌자고 이 연극은 우리네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착한 연극으로 위장하여 풀어낸 것일까. 어쩌자고 이토록 장수하고 있는 것일까.

- 휘몰아치는 막장 속 대책 없이 착한 연극

'막장'이 대한민국을 쓸고 지나간 지금, 어중간한 자극은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더 강하고 더 짜릿한 것만을 원하는 대중 속에서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착한 드라마를 가졌다. 이 착한 연극의 장수는 그래도 희망이 우리네 가슴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음을 닦는 강태국의 힘겨운 노력이 관객들의 찌든 때를 씻겨줄 무렵, 유산을 찾기 위해 달려온 가족들은 커다란 세탁기에 들어가 한바탕 휘둘리고 나온다. 멈춘 세탁기에서 나온 그들은 모두 흰 옷에 당황스런 해맑음을 지니고 있다. 사람을 세탁기에 넣고 세탁시켜 버린다는 유아적 발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다. 유치한가.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의 마음을 씻은 것은 세탁기가 아니다. 자신의 자리에 서서 따뜻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강태국이 그들과 우리들을 세탁했다. 이제 남은 일은 빨랫줄에 걸려 오늘의 햇빛에 자신을 말리는 것이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 방법을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은 아무렇지 않게 제시한다. 2010년 교과서에도 수록될 이 연극은 참으로 착하고 착하고 착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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