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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들이 눈을 뜬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vs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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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들이 눈을 뜬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vs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난장 스테이지] 십대들의 갈증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십대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자유다. 기계적으로 꿈을 꾸고 기계적으로 학습하는 십대들의 내면에서 소리 없이 꿈틀거리는 욕망. 그 욕망을 가진 십대는 죽은 시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눈뜨는 봄, F. 베데킨트)'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죽은 시인의 사회, 톰 슐만)'에는 에너지의 폭발을 꿈꾸는 십대들이 있다.

▲ ⓒ프레시안

◎ 봄에 눈뜨는 죽은 시인들
세상의 규칙에 맞춰 호흡할 수 없는 시인들의 죽음.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 구축하기를 시도하는 시인들은 죽음으로써 완벽한 자유를 완성한다. 살아있지 않기에 무한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는 죽음은 시인들과 화해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십대들에게 속삭인다. '카르페 디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은 새 학기 첫 강의 시간에 학생들을 불러 졸업생들의 사진 보기를 권유한다. 지금은 죽어 없어진 그들의 마지막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다. 과거의 그들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현재를 즐기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모두가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는 그때, 꽃피는 봄처럼 햇빛이라는 완벽한 조명 앞에 처음으로 서게 되는 때, 우리가 겪은 십대의 모습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토록 갈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한 십대들은 어른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상대에게 흡수되지 않는 까닭은 대립되는 두 개체가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겁고 뻣뻣하다. 곧 부러질 것 같은 싸움에서 십대는 승자가 될 수 없다. 시대 구조가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십대는 아무런 방어막 없이 부모와 선생이라는 거인들 앞에 선 소년과 같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어른들이 지키고 있는 감옥의 벽을 넘을 수가 없다. 이들이 세상과 자신을 노려보게 되는 그 봄, 죽은 시인들이 눈을 뜬다.

◎ 누가 그들을 죽였나, 모리츠와 닐
19세기 말,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속 10대는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과 어른들의 세계 사이에는 어찌할 수 없는 경계선이 있으며 어른들은 경계이탈을 죄악시 한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 가운데 줄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자기 것으로 치부해 잘라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어른들의 구역으로 넘어온 것은 사정없이 잘라버리려 한다. 그렇기에 10대란 어둡고 무지하며 갇혀있다. 무지는 폭력을 낳고 어른들은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자녀들을 죽인다. 작가가 바라본 10대란 반항해야 살수 있는, 적이 되어 감옥을 탈출해야 하는 존재였다. 이유 모를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시기다. 그에 비해 자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멜키어는 친구들을 위하여 성교육적인 글을 '동침'이라는 제목으로 써준다. 변화와 낙제에 두려워하던 모리츠가 자살하게 되자 화살은 '동침'을 쓴 멜키어에게 돌아간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역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앞에서 좌절하는 닐이 있다. 연극을 하고 싶던 닐은 무대 위에서 마지막 환희를 느낀 그날 밤, 아버지의 권총을 들고 세상으로부터 탈출한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멜키어와 마찬가지로 죽은 시인의 사회가 무엇인지 알려줬던, 잠자는 시인의 본성을 일깨웠던 키팅 선생에게 돌아간다.

◎ 결핍을 채우는 유일한 한 가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결핍돼 있는 것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있다. 십대 각자의 리듬을 인정해 주는 키팅 선생이다. 키팅은 두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험하며 가장 로맨틱하다. 가장 모범적이며 가장 불량하다.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귀 기울일 줄 아는 유일한 캐릭터다. 그는 우리의 캡틴이 되어 안내하기를 즐거워하는 선장이다. 열정으로 가득 찬 인류를 키팅이 응원한다.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에 과거의 얼굴들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고 말한다. 획일화된 것 따위는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바보처럼 걸어도 상관없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걸으면 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학생들이 스스로 책상 위에 올라가 다른 시각 갖기를 시작한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멜키어는 죽은 모리츠와 벤들라와 함께 손을 잡고 마지막 힘을 다해 일어난다. 그들은 지금도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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