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춘 의문사유가족대책위원장은 5분 동안 이어진 발언에서 "안타깝다"는 표현을 수차례 반복했다. 1982년 아들 고 허원근 씨를 떠나보내고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한 그였다. 허원근 씨는 휴가 이틀을 앞두고 부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는 "억울한 의문의 죽음을 또다시 암흑의 역사 속에 은폐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모든 의문사에 대한 조사를 즉각 실시하고 철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4월로 해산되는 과거사위원회, 유가족 "한맺힌 목소리를 들어야"
2010년 4월이면 해산되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를 두고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문사유가족대책위원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추모연대가 서울 충무로 과거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2010년 4월 활동이 정지되는 과거사위원회. 정리기간까지 합한다면 10월까지 활동이 진행된다. 기본법 25조에 따르면 2년 더 활동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명박 정권 아래에선 요원하기만 하다.
▲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은심 여사가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 |
유가족은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이한열 씨의 어머니 배은심 유가협 회장은 "왜 우리가 이렇게 남의 건물에 와서 한 맺힌 절규를 하는지 국민들은 모를 것"이라며 한탄했다.
그는 "공권력에 목숨을 빼앗겨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며 "죽은 자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진실을 밝혀달라고 이 자리에 선다"고 한 숨을 내었다.
"새 위원장 온다면 보수인사, 되레 조사를 후퇴시킬 수도…"
과거사위원회의 해산도 해산이지만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현 안병욱 과거사위원회 위원장 임기가 마무리되는 2달 뒤다. 송호진 의문사유가족대책위원회 간사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신임 위원장이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일 것은 뻔하다"며 "문제는 신임 위원장이 여태껏 조사된 것을 진전시키는 게 아니라 되레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실례로 이명박 정권 출범 후인 2008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성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가 선출된 이후 대부분의 진정서가 기각되고 있다고 유가족대책위는 주장한다.
만약 신임 위원장이 과거사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후, 그동안 조사한 사안을 별다른 조치없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넘길 경우도 문제다. 의문사 문제는 다시 15년 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 간사는 "그렇게 된다면 군인으로 의문사 당한 사람은 국방부로, 민간인으로 죽음을 당한 이는 행정안전부로 사건이 이송될 것"이라며 "결국 유가족은 다시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0~1990년대에는 그나마 유가족이 건강해서 돌아다녔지만 이젠 대부분 80 넘은 노인이라 더 이상 뛰어다닐 수도 없다"고 답답한 상황을 전했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는 어떠한 여지도 없다"
유가족은 그나마 노무현 정권 때 이뤄진 과거사위원회를 붙잡고 있는 상황이다. 박제민 유가협 사무국장은 "현 과거사위원회가 이명박 정권 인사로 넘어가면 아무런 여지가 없다"며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의문사 유가족은 현재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어차피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는 과거사위원회를 연장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진실을 파헤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제민 사무국장은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됐던 위원도 지금의 과거사 문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데 현재의 친 정부 성향 위원이 올 경우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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