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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영의 종두법? 조선 시대부터 예방 접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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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영의 종두법? 조선 시대부터 예방 접종 있었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조선 최초의 예방 접종, 종두법

조선 시대 민중을 가장 괴롭힌 질병은 천연두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고열·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2주 정도를 버티면 흉터만 남기고 사라지지만, 많은 이들은 그 전에 죽었다.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를 보면, 4세 이전의 영아 40~50%가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렇게 무서운 질병이다 보니, 천연두는 예로부터 두창, 마마, 손님, 포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 중 백세창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일생에 한 번은 겪고 지나가는 병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조상 역시 한 번 걸리면 재발은 없다는 '면역'의 기능을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이다.

흔히 지석영이 19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천연두 백신이라고 할 수 있는 종두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의학사에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임을 아는 이런 오류가 여전히 상식처럼 알려져 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천연두의 예방 접종을 통칭하는 종두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영국의 제너가 도입한 우두법이다. 소의 천연두라고 할 수 있는 우두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해, 사람의 천연두 면역을 얻도록 하는 게 우두법이다. 다른 하나는 천연두를 앓은 이로부터 시료를 얻어서 사람에게 접종해 면역을 얻도록 하는 인두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 인두법이 이미 널리 실시되었다. 인두법의 핵심은 시료를 채취하는 방법이었다. 자칫하면 천연두가 감염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한의사 등은 이 시료 채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시료 채취 방법이 동원되었다.

기록을 보면, 환자로부터 직접 채취해 쓰는 법, 환자의 옷을 입히는 방법, 고름·딱지를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법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한의사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런 방법은 갖가지 부작용이 있기는 했으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인두법은 천연두의 예방 접종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역사 속에서 허준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바로 천연두 때문이다. 허준이 양예수를 제치고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된 것은 바로 광해군의 천연두 때문이었다. 허준은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함으로써 선조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었고, 결국 <동의보감>을 쓴 명의로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실제로 허준은 천연두를 다른 전염병과 명확히 구별했다.

▲ 국내에 천연두 예방 접종, 종두법을 처음 시행한 것은 지석영이 아니다. 그 전에 종두법의 하나인 인두법이 널리 보급되었고, 정약용은 우두법도 소개했다. ⓒ프레시안
이뿐만이 아니다. 지석영이 도입했다는 우두법의 존재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바로 정약용이 그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 천연두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러 명의 아이를 이 병 때문에 잃은 정약용은 종두법 전반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는 인두법뿐만 아니라 최초로 우두법을 소개했다. (그가 우두법을 직접 시행했다는 설도 있다.)

서양 의학은 천연두를 몰아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이 전염병과 싸워온 노력이 깔려 있다. '종두법의 첫 도입자', 이런 찬사를 지석영이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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