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입니다. 검찰총장에 지명됐다가 '스폰서 검사'라는 오명을 쓰고 물러났던 사람입니다. 수십 년 지기 박모 석모 씨로부터 아파트 구입자금 15억여원을 빌리고 제네시스 승용차를 제공받았다는 의혹 등에 휩싸여 검찰총장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물러난 사람입니다.
정운찬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천성관의 그림자를 봤습니다. 등장인물과 오간 액수가 다르지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 않은 점을 확인하면서 천성관의 그림자를 확인했습니다.
강운태 민주당 의원이 물었습니다. Y모자 회장으로부터 용돈을 간혹 받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정운찬 후보자가 대답했습니다. "(Y모자 회장이) 너무 궁핍하게 살지 말라고 하면서 소액을 줬다"며 그 액수가 100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스폰서 총장'이라고 몰아붙이자 정운찬 후보자가 맞대응 했습니다. Y모자 회장과는 "형제와 다름없는 사이"라며 "스폰서 총장이라는 말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정운찬 후보자는 이리도 당당했습니다. 나중에 "죄송하다"며 몸을 낮추긴 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마뜩치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고개를 숙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목을 뻣뻣이 세웠습니다.
▲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프레시안 |
다른 사람은 신태섭 전 동의대 교수입니다. 총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KBS 이사가 됐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임됐던 사람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점을 문제 삼아 동의대 측에 해임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일었던 사람입니다.
정운찬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신태섭의 반면을 봤습니다. 정운찬 후보자가 맡은 자리와 그가 건너뛴 절차를 접하면서 신태섭의 반면을 봤습니다.
정운찬 후보자는 어겼습니다. 국가공무원인 서울대 교수가 겸직할 수 있는 자리는 사외이사에 국한된다는 법 규정을 어겼고, 교수 외의 다른 자리를 맡을 때는 총장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복무규정을 어겼습니다. 사기업인 '예스24'의 고문직을 스스럼없이 맡았습니다.
정운찬 후보자는 너무도 당당했습니다. 자신이 '예스24'로부터 받은 돈은 급여가 아니라 고문 수당이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총장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규정은 잘 알지 못했다고 버텼습니다. 자신이 그 회사의 고문직을 수락한 건 책을 보급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며 이런 자신의 선의를 이해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석학'이라 해도 오밀조밀한 세상 사는법을 모두 통달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냉철한 이론가라 해도 무오류의 완벽주의를 구현할 수는 없습니다. 정운찬 후보자 말처럼 법과 규정은 잘 모른 채 선의로 생각해서 돈을 받고, 선의를 펼치려고 고문직을 맡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어쩌죠? 이렇게 이해하려고 하니까 난감해집니다. 정운찬 후보자와 똑같은 또는 비슷한 이유로 고개를 떨궜던 두 사람은 어떡해야 하나요? 한 사람은 국민에게, 다른 사람은 정권 또는 학교측에 매타작을 당하고 길거리로 내쫓겼는데 이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요?
정권이 바뀌면서 발생한 도덕성 이중잣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정권 하에서 발생한 이중잣대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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