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쓰는 이 돈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예산(국민의 돈)을 잘 관리해야하는 이유다. 따라서 정부도 돈 관리를 위해 회계를 한다.
'정부 회계' 키워드 가이드 조일출 박사는 회계학을 전공했으며 국회에서 다년간 일한 전문가다. 그는 현재 한양대 산업경영디자인대학원 경영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정부 회계 관련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라 살림의 들고남을 보여주는 정부 회계에 정치인들마저 무관심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정부 회계를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조 박사에게서 변화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내용은 쉽지 않았지만.
▲ '정부 회계' 키워드 가이드 조일출 박사 ⓒ프레시안 |
"의원들도 회계 잘 몰라요"
프레시안 : 정부 회계는 일반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분야다. 회계원리도 아니고, 정부 회계를 키워드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조일출 : 사람들이 기업회계는 친숙한데 이상하게 정부 회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주식투자자들은 기업 투자를 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등 기업회계부터 확인하지 않나. 정부도 마찬가지다.
법이 바뀌면서 지자체도 이제 단체 회계를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중앙정부도 정부 회계를 공개하게 된다. 시민 누구나 정부의 예산 관리를 직접 감시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우리 지자체의 재정은 안전한 상태인지, 미래에도 우리 동네가 제대로 성장할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4년마다 실시하는 지자체장 선거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지역 주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데 도움이 된다. 결국 정부 회계를 잘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된다.
프레시안 : 하지만 재무제표를 시민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전문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회계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조일출 : 키워드 가이드로 나선 이유도 국민들의 회계정보 이해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하는 정부 회계라는 게 주민을 위한 정보라기보다는 재정 콘트롤을 위한 정보 생성에 목적이 있다 보니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프레시안 : 정부 차원에서 지역주민 교육을 실시하지는 않나? 제도가 마련됐으면 그에 맞게 교육도 이뤄져야 할텐데?
조일출 :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심지어 정치인들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올해 초 지방도시 구의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정부 회계와 재무제표 이해하기'라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부 회계 공개뿐 아니라 회계 방식도 기업처럼 복식부기·발생주의가 도입됐는데, 개념을 전혀 이해하시지 못하더라.
정치인들이 회계원리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나? 지자체장을 견제하기 어려워진다. 중앙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도 모르면 어찌 되겠나. 내년부터 달라진 회계방식이 미치는 영향이 결산예산 때 반영될 텐데, 정치인이 이를 모르면 문제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사들이 이사회를 개최하는 꼴이다. 어렵지만 회계 전공자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열심히 일해주셔야 할 듯하다.
(편집자 : 부기(簿記)란 간단히 말해 장부에 돈의 입출을 기입하는 행위이다. 단식부기는 가계부처럼 수입이나 지출 등 하나의 사건을 별개로 간단히 기재하는 방식이다. 반면 복식부기는 거래의 이중성을 고려해 하나의 경제적 사건에 따른 반대급부까지 동시에 기입하는 방식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개인 A가 돈 1만 원으로 옷 한 벌을 샀다면 단식부기의 경우 '지출 1만 원'으로 간단히 정리하지만, 복식부기라면 '자산(옷) 1만 원/비용 1만원'으로 동시 기입한다. 복식부기는 단식부기보다 복잡하지만 자산·부채·자본항목을 쉽게 구분 가능하다.
이런 손익계산은 두 가지 방식, 곧 현금주의와 발생주의로 실시한다. 현금주의는 말 그대로 손익의 인식을 현금의 이동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발생주의는 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경제적 사건이 일어난 순간 회계처리 대상으로 인식한다. 대부분 기업회계는 발생주의 원칙을 따른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 회계 혁신과제로 복식부기와 발생주의를 선정했다. 이에 국가회계법이 개정되면서 지난 2007년부터 지방자치단체를 시작으로 시행되고 있다.)
부채와 채무 달라요
프레시안 : 정부 회계보고서는 언제 볼 수 있나?
조일출 : 중앙정부 복식부기는 기획재정부가 총괄하고, 지자체는 행정안전부가 총괄한다. 1년에 한 번 발표하는데, 다음해 8월 31일까지가 기한이다.
프레시안 : 내년 지방선거 이후 발표될 가능성이 높아 아쉽다.
조일출 : 내년 선거 때는 도입 2년째라 실질적 영향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년에 뽑히는 자치단체장은 개정된 정부 회계의 감시를 처음 받는 지자체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중요한 선거과정에서 국가재정 관련 부분이 뜨거운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대선이나 지방선걸르 보면 국가재정이 핵심 화두다.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더라도 "그 재원을 어디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조달할 것이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정부 회계를 사람들이 알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선거공약이 보다 현실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정부 회계가 발전하면 민주주의도 발전한다.
프레시안 : 본인이 만약 정부 회계 분야 일을 지금 맡게 됐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조일출 : 오랜 기간 우리 정부가 확실히 하지 않는 분야인데, 국가부채와 국가채무 개념을 명확히 하고 싶다.
채무는 엄밀히 말하면 부채의 한 항목일 뿐이다. 정부에서 국가부채가 380조 원 된다고 다른 나라보다 적다고 하는데, 채무를 말하는 것이다. 작년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한국 정부의 부채는 863조 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76%에 달한다. 굉장히 많다.
내년부터 복식부기와 발생주의를 기반으로 국가가 대차대조표를 공개하게 되면 이 부분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 정부가 국가부채 관련 개념도 정의못했는데 이건 바로잡아야 한다.
프레시안 : 채무와 부채에 대해 보충설명을 부탁드린다.
조일출 : 간단히 말해 정부가 직접 진 빚만 채무로 잡는다. 공기업 부채는 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부채는 정부가 서류상 관여한 모든 부분을 총괄한다.
일각에서 "부채를 과대포장하면 국가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 투명하지 못한 기업회계로 기업이 문어발 확장을 하다 나라가 무너진 게 바로 외환위기 아닌가. 오히려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면 국가신뢰도는 더 올라간다.
정부 재정, 적정한 상태 유지해야
프레시안 : 아무래도 정부 회계는 공익을 추구하는 집단(정부)의 회계라는 점에서 기업회계와는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이 차이가 극명히 드러나는 회계 계정과목이 있나?
조일출 : 약간의 차이만 있지 기본적 개념은 같다. 기업의 총수익이 지자체의 경우 지방세 수익, 세금 외 지방공기업 수익, 세외 수익 등으로 다를 뿐이다. 기업의 순이익은 정부 회계에서는 '순수익' 항목으로 표기한다. 굳이 기업회계와 다른 점을 찾자면, 기업의 경우 순이익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정부는 '적정한' 상태가 좋다는 정도다.
프레시안 : 공기업 회계에도 정부 회계 원리가 어느 정도 녹아들어갈 것 같다.
조일출 :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성과 공공성은 동시에 갖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삼성전자도 이윤추구를 하면서도 장학재단사업 등도 하지 않나. 공기업도 공익을 위해 일하지만 한편으로는 재정독립을 위해 경영효율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재정적자가 누적돼 세금 잡아먹는 하마가 되면 곤란하잖겠나?
프레시안 : 지난 1999년 말부터 2007년 6월까지 국회에서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당시 주로 맡은 일이 무엇인가?
조일출 : 주로 맡았던 분야는 산자위(현 지식경제위원회)였다. 정부 투자기관과 관련한 부분들을 감시했다. 정부투자기관의 경영효율성을 분석한 것도 내 작품이다. 아무래도 정치권에 오래 있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했다. 선거기획에도 참여하고, 파견 나가기도 했다.
프레시안 : 국회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조일출 : 부도공공임대아파트특별법이 지난 2006년 12월 통과되는데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 십여년 넘게 언론에서도 조명되던 고질병인데 그제서야 법제화가 된 거다. 공공임대아파트가 국민주택기금 지원받아서 지은 아파트를 서민을 위해 임대하는 건데, 건설업자가 세 들어올 사람에게 보증금만 받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서 법적으로 세입자의 보증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프레시안 |
조일출 : 정부가 쓸 돈이 없으니 채권을 발행해 빚을 지는 게 적자재정이다. 지금 당장 우리야 혜택을 받으니 좋은데, 문제는 우리 자손이 그 빚을 떠안게 된다는 거다. 캘리포니아주를 봐봐라. 한 달 전 재정비상상태를 선포하고 사실상 두 손 들어버렸다. 재미동포가 많이 사는 오렌지 카운티는 이미 파산했다.
기업이 빚을 못 이기고 무너지면 어떻게 되나? 구조조정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하고 재정건전성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라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 국민들도 정부의 지출을 감시해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
지식은 사회정의 실천에!
프레시안 : 보통 회계학 공부하면 당연히 회계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가서 돈을 많이 벌 길을 찾는다. 왜 기업회계 공부 안 하고 비영리단체 회계를 공부했나? 돈벌이 별로일 것이라는 고민 없었나?
조일출 : 그냥 좋아서 한 것이다. 굳이 사족을 더 달자면 '이왕 배운 지식을 사회정의를 실천하는데도 써야하지 않겠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제껏 많은 비영리단체가 단식부기 현금주의로, 곧 가계부 쓰듯 회계처리를 해 와서 투명성이 많이 떨어졌었다.
프레시안 : 회계학을 공부한 이유는 뭔가? 요즘 경영학부생들 사이에 회계학은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조일출 :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소셜 컨설턴트(social consultant)'이다. 2001년 박사과정을 밟을 때 이 말을 했다. 당시 교수님이 "왜 회계학 박사과정을 밟으려 하는가?"라고 나에게 물었는데 "소셜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 회계의 색다른 영역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답한 기업이 난다.
프레시안 :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포럼을 운영하는 이유도 그런 것인가?
조일출 : 그렇다. 포럼회원 중 관련 전공 교수들이 많다. 그 사이트를 만든지 8~9년가량 되는데, 지금이야 다들 일반화된 정보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비영리단체 회계자료 자체가 없었다. 많은 분들에게 정부 회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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