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돌파했다는 소식은 자못 충격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한자릿수까지 떨어졌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등해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을 합리적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MB의 국정철학이나 기조가 변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MB식 의사소통방식이 변했다는 징후를 발견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의 지지율은 가파르게 상승해 50%를 가뿐히 넘어섰다. 눈 밝은 시인의 표현을 빌어서 묻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정치 및 여론지형에서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은 대략 30~35%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웬만한 일에는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외환위기를 불러와 나라경제를 파산 일보 직전에 몰고 가더라도…. 이들 열혈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MB가 집권한 이후 촛불공세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자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MB의 강권통치가 본 궤도에 오르자 콘크리트 지지층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 20%내외의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들은 무당파거나 부동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이 MB지지로 돌아선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힘입어 주가 및 부동산 가격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자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MB지지대열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MB의 '친서민 퍼포먼스'도 이들을 현혹시켰을 것이다. 정책적 차원에서 MB의 친서민 행보가 어떤 성과를 낼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을 MB지지율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MB지지율이 쉽사리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권자의 30~35%에 이르는 콘크리트 지지자들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20%내외의 부동층도 경제상황이 급격히 나빠지거나 MB가 커다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쉽사리 지지대열에서 이탈하지는 않을 것이다. MB도 좌충우돌하던 취임 초와는 달리 국정운영에 노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MB가 통치의 기술을 신속하게 익혀가고 있는데다 방향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유능한 참모들의 조력을 받고 있는 만큼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낼 실책을 저지를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MB에게는 여론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조중동 등 과점신문들과 한국방송 등 일부 방송의 강력한 엄호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 치솟는 집값을 잡으라고 날이면 날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공격으로 지면을 도배하던 조중동 등 과점신문들은 MB로 인해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전세값이 폭등하는데도 불구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시장이라도 한 번 방문하고 오면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냐고 질타하던 조중동 등 비대신문들은 틈만나면 시장으로 달려가는 MB에게는 관대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비대신문들과 최근에 가세한 한국방송 등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MB가 받고 있는 지지율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반 MB연대'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과 시민사회 진영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반 MB연대'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혹한 말이지만 그것은 사행심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발상이다.
대한민국 정치지형상의 상수(常數)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은 반(反) 노무현을 기치로 내걸고 정권을 찾아올 수 있었지만 자유주의 및 개혁ㆍ진보 진영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반 노무현이라는 깃발 아래 정권을 탈환할 수 있었던 것은 객관적인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한국사회 전 부문의 물질적ㆍ상징적 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주류(main stream)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았던 데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고 자신들에게 표를 던지는 골수지지자들이 있었다.
아울러 박근혜와 이명박이라는 유력한 지도자가 있었고 국민들에게 '물질적 욕망 충족'이라는 나름의 비전도 제시했다. 주관적 역량도 있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주당을 위시한 진보ㆍ개혁 진영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역량 가운데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의 진보ㆍ개혁 진영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은 1997년과 2002년 보다 훨씬 낮다.
97년에는 외환위기라는 외부적 충격과 이인제 출마라는 보수 내부 분열이라는 객관적 조건이 있었다. 또 DJ라는 걸출한 지도자 및 DJP연합이라는 주관적 역량이 결합해서 건국 이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다.
2002년에는 한반도 위기 상황이라는 객관적 조건과 노무현이라는 매력적인 지도자가 국민의 변화를 바라는 욕구를 자극해 대선에서 겨우 승리할 수 있었다.
객관적인 조건이야 진보ㆍ개혁 진영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관건은 주관적인 역량을 다음 총선과 대선 전까지 얼마나 키울 수 있느냐이다. 진보ㆍ개혁 진영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대등한 승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진보ㆍ개혁 진영의 지지층은 한나라당의 콘크리트 지지자들에 비해 수적으로도 열세일 뿐 아니라 이념적, 문화적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고 폭넓다.
이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올바른 국가발전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어떤 가치와 원리로 재구성할 것인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 부면에 어떤 정책패키지를 사용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디자인해 유권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진보ㆍ개혁 진영이 집권하면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보다 무엇이 얼마나 좋아질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 진보ㆍ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이 결집할 수 있을 것이고 부동층도 지지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층과 수적으로나 충성도 면에서 대등하거나 조금 열세 수준의 지지층을 확보한 후에야 정치공학이 발휘될 장이 열리는 것이다.
진보ㆍ개혁 진영이 지금 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올바른 국가발전모델을 디자인 하고 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정당을 만들고 시대정신을 구현할 인물을 발굴하는 것이다. 물론 위의 과제들 가운데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위의 과제들이 충족되지 않고는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꺾을 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반 MB연대'와 같은 어설픈 정치공학에 의존해 정권을 탈환할 생각에 몰두하는 한 진보ㆍ개혁 진영이 집권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야당들과 시민사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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