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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조는 없다'? 좋은 언론이 없다!

[기고] 13년 유예된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문제를 대하는 그들의 시선

바야흐로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정국이 펼쳐지고 있다. 노사정이 지난 8월말부터 머리를 맞대고 난제를 풀어가고 있는 와중에 소위 보수(혹은 메이저) 언론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 신문이 이 문제와 관련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14일 <조선일보>는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입을 빌어 "13년 전에 법으로 합의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의 시행을 미적거리는 정부가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냐며 "노동운동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해야 만이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박태욱 대기자도 "현재 상당수 대기업 노조는 집행부의 귀족화, 비대화를 우려하는 단계"라며 "13년간 미뤄온 노사선진화법이 햇빛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 신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13년 전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니 이제라도 시행해야 한다. 둘째,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글로벌 스탠더드(혹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확립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이 법은 지난 1996년에 만들어져 1997년, 2001년, 2006년 세차례 노사합의로 유예됐다. '미뤄'오거나 '시행을 미적'거린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노사의 합의 아래 유예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노사는 왜, 지난 13년 동안 이 법의 시행을 원하지 않았을까. 노동조합은 법의 시행이 노조 존립에 위협을 주기 때문에 저항을 했다. 사용자는 법 시행에 따른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 발생하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13년간 유예에 동의했다.

이런 노사의 입장은 현장으로 갈수록 분명해진다.

최근 한 일간지 기자와 함께 경남 창원을 방문했다. 전임자 임금 지급에 대해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중견기업 인사노무 상무는 "노조의 조합비 상태를 보거나, 지금까지 노사관계를 고려했을 때, 굳이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보수적인 언론사의 논조와 맞지 않았는지 지면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이 회사 노조 위원장도 "노사관계를 안착시키는데 필요한 시간이 십수 년이라면 그것을 망가뜨리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단 며칠이면 충분하다"며 "전임자 임금이 바로 그러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노사 모두 전임자 임금이 현재의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었다.

▲ 노사의 '관계'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 아래 강제적인 법 적용으로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노력 속에서 이뤄지며 이것이 '선진적인' 노사관계다.ⓒ프레시안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의 이런 상황을 모르는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글로벌스탠더드, 노사관계 선진화 운운하며 법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의 하락이 후진적인 노사관계 때문이고,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하지만 고분고분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전임자 임금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지난 11일 <동아일보>는 '좋은 노조는 없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노조의 본질은 집단 이기주의"라고 정의한 뒤, "노조가 자꾸 공익을 들고 나오는 것은 노조의 사익(사익)을 가급적 뒤로 감추고 공익을 앞세워야 노조 활동이 순조롭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며 "국가 경쟁력 강화의 최대 걸림돌인 노사 문제를 안정시키려면 국민의 쿨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상반기를 돌이켜보자. 7월 비정규직법의 적용을 앞두고, 정부와 보수언론은 100만 해고설을 유포하며 비정규직법 개정을 역설했다. 법 개정에 반대하는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해고는 신경 쓰지 않고 명분만 앞세운 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비난을 했다. 그러나 7월이 지나고 법이 적용됐지만 대량해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했다면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그나마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법 개악을 막지 않았다면, 수십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또 다시 2년 동안 고용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하고 있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심의위원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등 60여 개가 넘는 정부위원회에 참여해 정부 정책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사회 취약 계층을 대변하고 서민의 편안한 노후 생활을 지켜내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노동조합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집단 이기주의'인 노동조합을 정부 위원회에 참여시킨 이 정부는 '친 노동자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어느 일방의 독점으로는 결코 유지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노동조합을 각종 위원회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경제 주체인 노와 사가 '원활한 관계'를 이룰 때, 안정적인 사회와 경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정부도 아는 것이다.

개별 기업의 노조도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의 단순한 고충처리를 비롯해 산업안전 분야까지 기업 운영의 전반에 걸쳐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경제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7조1000억 원 규모로 GDP의 1.67%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감독관 1인당 담당 노동자수는 3만2527명으로 영국의 5.2배, 독일의 4.0배, 미국의 1.9배 수준이며, 산업안전감독관 1인당 담당 사업장수 역시 3324개 소로 영국의 7.3배, 독일의 5.4배, 미국의 3.2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노사가 공동으로 산업재해 기구를 만들 때 산재발생률이 감소했다.

이처럼 몇몇 언론의 선전선동과는 다르게 개별기업에서부터 중앙 기구까지 노동조합은 수많은 역할을 하며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오히려, <동아일보>의 칼럼과 반대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국민들의 쿨한 시선이 필요"할 때다.

노사의 '관계'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 아래 강제적인 법 적용으로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노력 속에서 이뤄지며 이것이 '선진적인' 노사관계다.

13년간 묵은 과제가 다시 노사 앞에 펼쳐졌다. 이 문제가 또다시 미래에 우리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뽑아야 할 것은 전봇대만이 아니다.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법 조항을 깨끗이 묻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글로벌'이고 '선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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