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정권이 큰 위험을 겪게 되리라는 깨달음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이 담긴 인터뷰 기사를 실으며, <신동아> 최근호는 "좌파로 변신?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윤증현식 영리병원 허용하면 정권에 혼란 온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영리병원을 반대하면 좌파'라는 생각에 따른 제목이다.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한국의 자랑거리"
그런데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에겐 이런 기사가 어떻게 비칠까. 건강보험공단 서초남부지사에서 일하는 선명래 씨는 "웬 이념 타령이냐"라며 말문을 열었다. "건강보험체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이 왜 좌파라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그는 "건강보험 제도는 한국이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하는 일, 그리고 일터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선 씨가 그런 경우다. 1978년부터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해 왔던 그는 자발적인 건강보험 홍보대사이다.
이런 그가 노인장기요양보험 키워드 가이드로 나섰다.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노인요양보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 2005년부터 시범사업이 실시됐으며, 2007년 4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전면 시행됐다.
선 씨는 지난해 3월 노인요양보험운영센터장을 맡았다. 1년 뒤, 그는 다른 업무를 맡게 됐지만 노인요양보험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하다. 틈만 나면 그는 노인요양보험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7일 오후 서울 옥인동 프레시안플러스 사무실에서 그와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초고령화 사회로 달음질하는 한국, 노인복지는 이제 걸음마
- 노인요양보험에 대해 낯설어 하는 이들이 제법 있을 듯하다.
▲ '노인장기요양보험' 키워드가이드 선명래 씨. ⓒ프레시안 |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목욕, 간호, 세탁, 청소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노인요양보험이다. 노인 복지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차츰 다듬고 발전시켜가야 하는 제도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늙으면 누구나 몸이 아프다. 도움이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가족에게서만 이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와줄만한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그저 방치돼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이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는 게 노인요양보험의 취지다. 자신은 아직 노인이 아니더라도, 주위에는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 많이 있을 게다. 그들, 또는 그들의 가족에게 노인요양보험 이야기를 꺼내보라. 눈을 반짝이면서 귀를 기울일 게다.
시설급여, 재가급여, 특별현금급여, 복지용구 서비스…"필요하면 누구나"
- 어떤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자세히 듣고 싶다.
국내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65세 이상 노인으로 6개월 이상 혼자서 생활하기 어려운 분이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65세 미만이어도 치매, 뇌혈관질환,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등 노인성질환을 앓고 있는 분이면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의사 또는 한의사가 발급한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 의사 소견서를 발급받아 가까운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 제출하면 된다.
노인요양보험의 도움을 신청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본인이나 가족, 혹은 대리인이 직접 방문해서 신청해도 된다. 또 우편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신청도 가능하다.
이렇게 신청하고 나면, 건강보험공단이 조사를 한 뒤 등급판정위원회에서 등급을 판정한다. 그리고 나면 노인요양보호사 등으로부터 등급에 따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도움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시설급여, 재가급여, 특별현금급여, 복지용구 서비스 등이다.
시설급여란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하여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요양 1~2등급을 받으면, 시설급여를 선택할 수 있다. 재가급여는 가정에서 요양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요양 3등급을 받으면, 시설급여를 이용할 수 없고 재가급여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년 7월부터는 3등급을 받은 분도 본인의 뜻에 따라 시설급여를 이용할 수 있다.
특별현금급여란 가족이 아니면 도저히 도움을 줄 수 없는 특별한 경우를 위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는 도서, 벽지에 살고 있다면, 정기적으로 노인요양보호사를 파견하는 게 불가능하다. 또, 천재지변이 일어난 장소에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격 등의 이유로 가족이 아니면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은 '가족요양비'를 지급한다. 수급자는 요양등급(1~3등급)에 관계없이 매월 15만 원의 현금을 지급받는다.
복지용구 서비스란 말 그대로 노인에게 필요한 복지용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동변기, 보행차, 지팡이, 미끄럼 방지 용품, 욕창 예방 방석 등 다양한 복지용구가 제공된다. 수급자는 1년간 160만원 한도 안에서 구입 또는 대여 방식으로 복지용구를 이용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제품과 가격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프레시안 |
노령화와 경제활동 인구 감소…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관건
-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수급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주 좋다. 특히 목욕 서비스에 대한 반응이 좋다. 노인들이 갖는 대표적인 불만이 목욕이이다. 직접 몸을 씻기 힘든 탓도 있고, 목욕탕에서 미끄러질 위험도 있다. 설령 가족이 있는 노인이라고 해도, 정기적으로 목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인요양보호사가 안전하게 목욕을 시켜주니 얼마나 좋은가. 다른 서비스 역시 반응이 아주 좋은 편이다.
- 일본에서 비슷한 제도가 먼저 도입됐다.
개호(介護)보험이 바로 그것이다. '개호'란 우리말로 간병, 수발 정도의 뜻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에 부딪혔다. 그래서 대응 역시 먼저 이뤄졌다. 1997년 12월 개호보험법이 마련됐고, 2000년 4월 1일 시행됐다. 그 이후, 3년마다 법 개정이 이뤄졌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족의 몫이라는 통념이 강했던 일본에서 개호보험이 도입된 것은 일본 사회에서 고령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결과다. 그런데 이 제도 도입 이후, 재정을 둘러싼 문제가 여러 차례 불거졌고 최근 총선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한국 역시 참고해야 한다고 본다. 노인의 수는 급증하는데,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 보험 재정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정교한 재정 정책과 보험료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 복지제도를 운용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세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일본 등은 사회보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병원을 국가가 운영하고, 의사 역시 공무원 신분인데 한국에서는 병원을 민간이 운영하되 진료비 가운데 일부를 사회보험이 부담한다. 노인복지 역시 한국은 사회보험이다. 이런 방식이 갖는 장단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어떤 복지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본다. 그 사회의 성격에 맞는 제도를 운영하면 된다. 한국 실정에는 사회보험 방식이 적당하다고 본다. 당장 징수율만 봐도 그렇다. 한국에선 세금 징수율보다 보험료 징수율이 높다. 세금 제대로 안 내는 사람은 많아도, 보험료 미납자는 적다는 이야기다. 복지 문제의 관건은 재정 확보인데, 한국에선 사회보험이 더 성공적이었다.
노인요양보험 재정의 경우, 국민이 납부하는 장기요양보험료에 국고 지원,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는 의료급여부담금을 더해서 충당한다. 그리고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에 장기요양보험료율을 곱한 값이며, 장기요양보험료율은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장기요양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올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총 소요재정은 약 2조 955억 원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장기요양보험료는 약 1조 2382억 원, 국고지원금은 2035억 원, 의료급여부담금은 6538억 원이다.
ⓒ프레시안 |
"노인요양보호사, 엉터리 자격증은 이제 그만"
- 현 제도에서 노인복지 실무를 맡는 것은 노인요양보호사다. 그런데 노인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엉터리로 발급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노인요양보호사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게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누구나 24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노인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그런데 교육기관 설립은 신고제다. 그래서 엉터리 교육기관이 난립했다. 그리고 이들 교육기관에서 출석부를 조작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혀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 240시간 교육을 이수했다는 증서를 발급하는 것이다. 지금은 돈만 내면, 아무나 노인요양보호사가 될 수 있다. 제도 시행 첫해인 지난해 7월 7만 명이던 노인요양보호사 숫자는 1년 만에 일곱 배 이상 늘어났다.
자격을 주기 전에 최소한 시험이라도 치게 하는 게 옳다. 또, 교육기관 인증 역시 까다롭게 해야 한다.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곧 이런 식으로 제도가 정비되겠지만, 이미 엉터리로 자격을 취득한 이들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이미 부여한 자격을 강제로 박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막막한 일이다.
노인요양보호사 자격을 강화하는 작업은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시급 6000원 수준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하는 일의 성격을 고려하면 대폭 인상하는 게 옳다. 또, 요양보호사들이 노인을 돌보는 본업보다 잡무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 역시 바뀌어야 한다.
"저소득층에겐 아직 먼 제도…의료와 결합하는 게 과제"
ⓒ프레시안 |
욕창이 있는 노인들은 욕창 파스가 많이 필요하다. 이게 한 장에 4~5000원 쯤 한다. 저소득층 노인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노인요양보험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서 개선할 부분이 많다.
문제는 그밖에도 많다. 의료기관과의 연계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노인 복지의 핵심은 결국 의료다. 의료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게 절실하다. 하지만 이 부분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인요양병원들의 이해관계가 한 이유다.
- 매달 내는 보험료에 대해 불평하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당신도 결국 노인이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늙고 병드는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서 늙고 병든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이념 운운하면서 사회보험제도의 발목을 잡는데,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키워드 가이드'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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