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상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품이다. 강남권 부동산 시장에서 특히 심각했다. 일부 지역 아파트 매매가는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06년 말을 이미 넘어섰다.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역대 최저치인 기준금리(2.0%)가 꼽힌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점인 CD금리가 낮은 기준금리를 바탕으로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CD금리는 지난 4월 16일 2.41%까지 떨어진 후 6월 4일(1베이시스 포인트(0.01%포인트) 상승)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8월 6일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 기간(2분기) 동안 확인된 주택담보대출은 전년대비 10.9% 증가한 254조4080억 원에 달했다. 일각에서 "한은이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거품을 방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열린 제20차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이전까지의 '애매모호한' 화법을 버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금리인상 신호를 보냈다. ⓒ뉴시스 |
그러던 한은이 드디어 칼을 빼들 기미를 보였다. 지난 10일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가 일부 인상된다 하더라도 지금 금융완화상태가 상당히 강해 (기존의) 완화기조는 유지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겠다고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준 셈이다.
이번에도 이 총재가 실제로 움직인(즉 금리를 올린) 것은 아니다. 경고는 이미 3개월 전부터 보내왔다. 이번 기자회견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경고 수준이 조금 더 강경해진 것뿐이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는 "눈에 띈다"는 말 이상을 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긴 시간을 들여 저금리 기조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한 게 대표적이다. 시장에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양해를 미리 구한 셈이다.
흔히들 통화정책의 기본으로 꼽는 기준금리 조절은 그리 쉬운 정책이 아니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불편하게 보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통화정책은 "재정정책보다 부작용이 적어 가장 좋은 거시경제 조절수단"으로 거론됐으나,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어려운' 문제점을 갖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는 환영받지만 인상은 경제주체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투자 시대'인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저축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총재로서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이 총재는 물가 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경기침체를 극복하려는 정부와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정부가 추석 전 내놓은 '21개 생필품 물가 관리'책은 한은에게는 "물가는 우리가(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섣불리 살아나는 경제에 개입하려 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인식될 수 있다.
시장뿐만 아니라 정부에게도 메시지를 주고 싶어였을까. 이 총재는 시장에 대한 경고와 양해에 이어 한 질문에 정색을 하고 답했다. "출구전략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청와대나 민간연구소 쪽에서 아직 많다"는 질문에 이 총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출구전략과 관련해)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정책을 실제로 결정해야 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 가면서 판단을 할 거라고 봅니다.
단지 어떤 결정을 남이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쪽에서는 통화정책이라는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평가를 해야 될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결국 우리 몫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무엇이 어떤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정책이냐 하는 것은 결국 그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한은이 걸어갈 길을 가겠다는 말이다. 금융위기 직전 물가가 폭등할 때 이 총재는 "한은이 정부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을 때였다.
이제 그의 남은 임기는 7개월. 대한민국 최고 금융수장으로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는 마지막 선택의 길에서 큰 방향을 택한 듯 보인다. 이날 채권시장이 그렇게 놀랐다는 '매파적 발언'으로 말이다. 지난 2일 "아직은 금리 인상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월권 발언'을 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놀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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