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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뼈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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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뼈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동의보감>과 치아

농암 김창흡은 그의 저서에서 치아가 빠진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한탄했다.

"숙종 44년 내가 예순여섯 살이 되던 해이다. 갑자기 앞니 하나가 빠져 버렸다. 그러자 입술도 일그러지고, 말도 새고, 얼굴까지 한쪽으로 삐뚤어진 것 같았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니 놀랍게도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 하였다."

지금이야 임플란트로 빠진 치아를 채워 넣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옛날에는 어떤 방식으로 치아를 치료했을까? 쥐를 이용한 처방들이 우선 눈에 띈다. 좀 흉측하지만 치아가 흔들리는 증상에 사용되는 '고치산(固齒散)' 처방이 있다. 이 처방은 쥐의 등뼈에 여러 가지 약물을 혼합해 만들었다.

'낙치중생방(落齒重生方)'이라는 엽기적인 처방도 있다.

"치아를 자라나게 하고, 치아를 다시 나오게 하는 데 숫쥐 뼈를 가루로 만든다. (뼈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다.) 쥐를 잡아서 껍질을 벗긴 다음 노사라는 약물로 문지르면 3일이 지나서 살은 다 헤지고, 뼈만 남는다."

▲ <동의보감> 등은 쥐의 뼈가 치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프레시안
옛 사람들은 쥐의 뼈가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 계속 자라는 걸 보고서 치아 치료에 쥐 뼈를 활용할 생각을 한 듯하다. 실제로 <동의보감> 곳곳에서는 이렇게 쥐 뼈를 치아 치료에 이용하는 갖가지 처방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치과의사들이 보면 실소를 하면서 옛사람의 무지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런 처방만 있는 게 아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풍치 처방이 있다. 잇몸이 패여서 치아가 흔들리는 현상을 되돌리려면, 염소의 다리뼈와 몇 가지 약재를 조합해서 쓰라는 것. 언뜻 들으면 또 다른 엽기적인 처방으로 들리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염소의 다리뼈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은 인산칼슘이다. 이 염소의 다리뼈에는 불소도 들어 있다. 치아의 구성 성분이 칼슘, 인, 불소 등인 것이나, 또 인산칼슘이 몸에 흡수돼 치아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사실 등을 염두에 두면 이 <동의보감>의 처방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봐도 상당히 그럴 듯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버드나무 껍질로 치통을 치료하는 처방도 나온다. 버드나무 껍질, 잎을 끓인 물을 입에 머금었다 뱉으면 어금니의 아픈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 아스피린의 원료는 살리실산인데, 이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해 얻을 수 있다. 진통제의 원조가 아스피린인 것을 보면, 이 역시 현대 과학의 상식과 맞닿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나 역시 잇몸 질환 치료를 위해서 몇 가지 처방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처방을 고민하면서 늘 머리에 떠나지 않았던 것이 바로 <동의보감>의 쥐 뼈를 이용한 엽기적 처방이다. 또 아는가? 앞으로 쥐 뼈가 치아 질환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확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동의보감>은 8월 31일 제9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자문위원들은 "<동의보감>은 독창적이면서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양 의학보다 우수하다고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 내부는 이런 사실을 놓고 혹시 현대 의학이 폄훼당하지 않을까, 한의학을 깔보지는 않을까, 이런 데만 몰두하는 듯하다.

<동의보감>은 서양 의학, 한의학을 가릴 필요도 없는 우리 공동의 유산이다. 서양 의학은 서양 의학대로, 한의학은 한의학대로 이 <동의보감>에 실린 갖가지 유산을 잘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게 지금 필요한 일 아닐까? 가장 '실용'을 지향해야 할 의학마저도 왜 이리 이념 과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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