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홍콩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수석대표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배포한 연설문에서 농업 분야에 대한 조건부 양보의 가능성을 밝혔다가 해당 문구를 삭제하기로 해 혼란을 일으켰다.
***기조연설문에선 "농업 부분에 대해 신축적일 용의가 있다"**
WTO 각료회의에 파견된 정부 대표단의 수석대표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14일 오후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오전에 한국 기자단에 미리 배포한 기조연설문을 통해 "농업을 포함해 아직도 국내적으로 민감한 일부 부문이 여전히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의 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축적일 용의가 있으며 협상에 기여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또한 김 본부장은 같은 기조연설문에서 "모든 협상 분야에서 균형 잡힌 성과를 확보하는 게 성공적인 협상 타결의 관건"이라며 "특히 한국으로서는 NAMA(비농산물 시장접근), 서비스, 반덤핑 협상에서의 가시적인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 기자들이 "농업 분야의 양보 가능성을 밝힌 것이냐"고 질문하면서 논란이 빚어지자 최혁 주 제네바 대사는 확대해석하지 말 것을 요청하면서도 "공산품 등 수출품목에서 다른 나라의 관세가 내려가면 우리가 그곳에 진출할 여지가 있는 만큼 (농산물 분야에 대한) 양보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김 본부장의 연설문과 최 대사의 발언은 '개도국 지위 유지와 농산물 관세 감축 최소화'라는 정부의 기존 협상방침이 수정됐음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고, 정부가 농업부문을 '수출 확대를 위한 바꿔치기 협상카드'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농림부, 우여곡절 끝에 문제된 부분 삭제하기로**
논란을 계속되자 정부 대표단에 포함돼 있는 농림부 관계자들이 해명에 나섰다. 한 농림부 관계자는 "김 본부장의 연설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며 "실제 연설에서는 문제된 부분이 빠질 것이고, 그것이 정부의 공식입장도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통상교섭본부는 "배포된 연설문은 초안에 불과하다"며 "논란이 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의 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축적일 용의가 있으며 협상에 기여할 준비가 돼있다'는 부분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설문구 수정 사건, 여진 계속될 듯**
한편 혼란 속에 기조연설의 일부 문구가 수정됐지만, 한국 정부의 수석대표인 통상교섭본부장과 WTO 본부에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을 진행한 제네바 주재 대사가 입을 모아 '농업부문에서의 양보 가능성'을 거론한 셈이어서 여진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의 홍콩 현지 언론담당자는 "외신에는 수정 이전의 연설문이 배포되지 않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애써 파문을 축소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반세계화 시위를 위해 홍콩에 체류 중인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들은 이런 소식을 전해 듣고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날 오후 '한국민중투쟁단' 주최로 진행되는 '아시아 민중결의대회'에서 김 본부장의 연설문 문구 수정 사건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힐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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