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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같은 심대평 파문에 정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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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같은 심대평 파문에 정색하는 이유

[김종배의 it] 정당정치 실상 보여준 상징적 사건

결과는 뻔하다.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심대평 총리 카드는 이미 없던 일이 됐고, 심대평 총리 카드 무산 과정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없던 일이 될 공산이 크다. 청와대와 이회창 총재 모두 더 이상 언급치 않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어떨까? 그럼 끝나는 걸까? 소동 또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면 되는 걸까?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털고 가기엔 이번 사태가 던지는 시사점이 너무 크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둘째 문제다. 모두가 정당정치 원리에서 일탈했다는 게 우선적인 문제다.
▲ 심대평 자유선진당 전 대표 ⓒ프레시안

청와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명박 대통령은 심대평 총리 카드를 단순한 인사 문제로 바라봤다. 세종시 문제는 정부 입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고(이회창 총재의 말은 청와대가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었다), 강소국 연방제 문제는 개헌이 수반되는 문제여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는 심대평이란 인물을 뽑아갈 생각만 했지 반대급부를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게 문제다. 심대평이 누군가. 야당의 당원이자 공당의 대표다. 당적이 다른, 이런 인물을 기용하려면 정식으로 정책연합을 제안해 '인물 받고 정책 주는' 거래를 시도했어야 하고, 동시에 여당으로부터 사전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이게 정당정치 책임정치의 기본원리다. 하지만 청와대는 하지 않았다. 거래는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봉사만 기대했다. 자신들이 설정한 '국민통합'이란 가치를 앞세우며 무조건적인 지원만 바랐다. 독선과 독주 행태를 재연한 것이다.

이회창 총재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이회창 총재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유선진당에게 심대평 총리 카드는 정책연합의 매개였다. 현안과제인 세종시 문제를 풀고, 종국적 과제인 강소국 연방제의 물꼬를 트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정당했다. 이회창 총재가 청와대측에 두 과제를 심대평 총리 카드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건 이상할 게 없었다. 청와대에선 개헌이 수반되는 문제를 어떻게 조건으로 걸 수 있느냐고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이회창 총재는 강소국 연방제 추진을 약속하라고 했지 강소국 연방제를 당장 내놓으라고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 이회창 총재가 심대평 총리 카드를 정책연합 차원에서 바라본 건 지극히 정당했으나 처리과정은 상당히 부실했다.

당의 정치적 좌표와 정체성이 걸린 문제라면 당내 의사결정구조에 올리는 게 옳았다. 혼자 판단할 게 아니라 당내 의사결정구조에 정식안건으로 올려 집단 토의와 집단 결론을 끌어냈어야 한다. 세종시와 강소국 연방제 사안은 이미 당론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게 이회창 총재의 주장이지만 어폐가 있다. 당론이 정해졌다 하더라도 당론 추진과정에 중대한 변수가 돌출되면 새롭게 전략을 짜고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이회창 총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심대평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회창 총재의 말은 "의원총회에서 (세종시와 강소국 연방제) 얘기가 있었다고 한 게 다(였)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언론에 노출된 후 이회창 총재가 당내 회의석상에서 말하곤 했다. 그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정당정치의 기본인 당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모두가 '밀실'을 선택했다. 심대평 총리 카드를 인사 문제로 바라본 청와대는 물론 정책연합 차원에서 접근한 이회창 총재 또한 밀실에서 비선 채널을 통해 얘기를 나눴다.

합당하지가 않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짠 여야구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면서 비밀에 붙인 건 합당하지가 않다.

과거엔 이러지 않았다. 결국 무산된 DJP연합도, 국민은 물론 당원의 반발까지 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도 과정만은 공개됐다. DJP연합은 두 당이 실무협상단을 꾸려 공식협상을 벌였고, 대연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제안했다. 연합 또는 연정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과정의 투명성만큼은 최소한으로나마 확보하려고 했다. 헌데 이번은 다르다. 청와대와 야당 당수가 국민 앞에서 진실게임을 벌이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할 정도로 비밀리에, 장막 뒤에서, 자기들끼리만 얘기를 주고받았다. 덕분에 전락했다. 국민은, 지역구민은 눈 뜬 장님으로, 결과가 도출된 후에 일방 통보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했다.

코미디에 가까운 정치 현상에 정색하는 이유가, 대충 털고가는 분위기인데도 없던 일로 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대평 총리 카드를 마냥 '선의'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심대평 총리 카드 무산 이후에 불거진 자유선진당의 분란을 단순히 '집안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대평 파문은 결코 일회적이고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당정치의 실상과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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