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은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인 7월 14일에는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이 계획돼 있었다. 입원을 하게 되니 김 전 대통령은 비서진에 "참석할 수 없다. 빨리 연락하라"며 "국영문 연설문을 보내 주최측이 참고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하려던 연설 제목은 '9.19로 돌아가자'였다. 연설문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공개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마지막 연설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역설한 지난 6월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행사'가 됐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로 쓰던 휘호. '경천애인' ⓒ김대중 평화센터 |
또한 오는 9월 미국을 방문해 18일 워싱턴에서 내셔널 프레스클럽(NPC) 연설과 23일 뉴욕에서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행사 참석에 예정돼 있었으나 역시 영원히 참석 못하게 됐다. 지난 5월 18일 서울에서 김 전 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꼭 참석하겠다. 9월 뉴욕에서 만나자"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만찬은 마지막 외부 만찬으로 기록되게 됐는데, 그날 일기에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해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보낼 문서도 포함됐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고 적었다.
마지막 해외여행은 지난 5월 4일 4박5일 일정으로 방문한 중국 베이징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시진핑 국가부주석, 탕자쉬엔 전 국무위원 등 중국 고위인사들을 만났는데, 5월 5일자 일기에 "북핵문제(절대 불용), 6자회담 계속, 남북관계 잘 되기를, 미국도 좀 더 협력해야 등 많은 문제 의견 일치, 만족스러운 회담이었음"이라고 적었다. 이 부분은 공개되지 않은 일기인데,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입원하던 날 이들에게 보낸 친필 서명 서신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서신이자 친필 서명으로 남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 서명에게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난 6월 29일 사저 경호를 지원하는 마포경찰서 이상정 총경이 <옥중서신>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국내여행은 지난 4월 고향 하의도 방문이다. 14년 만의 고향방문이었다.
"여보, 우리가 묻힐 곳은…"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이희호 여사와의 부부 관계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한강변 드라이브'를 즐기던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드라이브에 나선 것은 7월 5일. 당시 서강대교에서 행주대교까지 50분간 드라이브를 했다.
특히 한 번은 드라이브 도중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국립현충원을 가리키며 "여기가 우리가 묻힐 곳이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박지원 의원이 전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바람대로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됐다.
"책을 읽고 싶어 감옥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인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을 읽던 책들은 <제국의 미래>(에이미수나, 비아북), <오바마 2.0>(김홍국, 나무와 숲), <조선왕조실록>(박시백, 휴머니스트)이었다.
특히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대하역사만화로 총 14권인데, 김 전 대통령은 제4권 '세종-문종실록' 62페이지까지 읽었다고 최경환 비서관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책에 대해 "박시백 화백이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고 참고가 된다"고 일기에 적기도 했다.
최경환이 '전율을 느낀' 이유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의 일기를 공개하던 20일 "어떤 대목에서는 전율을 느꼈다"고 말해 기자들의 관심을 샀다. 기자들은 "정치인들에 대한 인물 비평이 있느냐",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 글이 있느냐" 등을 주로 물었다. 그러나 '전율'의 이유에 대해 최 비서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일기에 나타난 삶에 대한 관조적 자세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2009년 첫 페이지인 1월 1일 일기에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고 적었고, 1월 11일에는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고 적었다.
1월 17일에는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고 적었고, 4월 27일에도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고 적었다. '찬미예수 백세건강'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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