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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칠수와 대구시민, 그리고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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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칠수와 대구시민, 그리고 김대중

정말 객관적인 DJ 평전이 있었더라면

1.

60대의 대구 시민이 말했습니다. "평생 경상도 토박이로 살며 선거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찍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그가 말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 때 나라를 구하려고 애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고인을 달리 평가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코미디언 배칠수 씨가 말했습니다. MBC라디오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3김퀴즈'에서 7년 넘게 성대모사를 하면서 고인을 공부한 그가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너무나 아이같이 우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완벽하고 냉철한 이미지가 한순간에 깨졌다"고 말했습니다.

같습니다. 고인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도, 고인을 공부했던 사람도 정작 고인의 진면목은 보지 못했습니다.

2.

그저께 차안에서 들었습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인을 추모하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 국민이 성대모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행간을 읽었습니다. 국민 다수가 고인의 성대모사를 하는 것은 그만큼 고인이 유명했고, 친근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맞을 겁니다. 고인의 인지도는 99.99%쯤 될 겁니다. 젖먹이 아이를 빼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으로 추앙하고, 다른 사람은 '빨갱이'라고 욕합니다. 어떤 사람은 '불굴의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은 '대통령병 환자'로 혹평합니다. 고인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습니다.

약간 줄긴 했습니다. 오늘에 와서 호평은 늘었고 혹평은 줄었습니다.

하지만 인식의 전환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고인의 서거를 계기로 고인에 대한 회고가 이어지면서 인식을 새롭게 한 결과로 보긴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한국 특유의 정서, 떠나는 자의 등 뒤에 대고 아픈 말을 하지 않는 특유의 전통(?)에 따른 현상에 가깝습니다. 인식과 평가의 간극은 여전히 큽니다.

3.

고인은 생전에 말했습니다. "대중보다 반 발짝만 앞서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다릅니다. 대중의 절반은 반 발짝이 아니라 몇 발짝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 이렇게 간극이 큰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미 제기됐던 여러 이유들, 이념 공세와 언론 보도, 미디어 환경 등등의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문화입니다. 기록의 문화….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4.

번역판 평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자코뱅당의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이었습니다.

방대한 책이었습니다. 쪽수가 1000에 육박하는, 베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건조했습니다. 엄청난 쪽수에 담긴 내용은 칭송도 비난도 아닌 사실이었습니다. 시시콜콜한 신변잡사부터 교과서에 실려야 할 족적까지, 취합될 수 있는 모든 사실이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 평전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인슈타인 평전도 그랬고 프리다 칼로 평전도 그랬습니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평가 자료만 제시했습니다.

5.

상상해 봅니다. 이런 평전이 고인의 생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런 평전을 국민이 읽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접근 가능한 사실을 모두 접한 다음에 내려지는 개개인의 평가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건 그 사람의 자기 인식이고 자기 평가일 테니까요.

많은 얘기가 오갔을 겁니다. 인상에 치우치지 않고 느낌에 휘둘리지 않는 토론, 객관적 사실을 재료 삼고 자신의 가치관을 양념 삼은 진지하고도 생산적인 토론이 진행됐을 겁니다.

6.

이런 평전은 꼭 필요합니다. 사후만이 아니라 생전에도 꼭 필요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편향된 이미지에 갇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가의 몫이지만 제2, 제3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동시대를 사는 유권자의 몫입니다. 떠난 자에 대한 판단은 역사에서 꿈틀대지만 오는 자에 대한 판단은 현실에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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