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남북이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 하에 놓이고, 독자적인 정권 수립에 들어감에 따라 각기 상이한 의료 체제가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남한은 미국식 의료 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의학 교육이 6년제로 개편되면서 의학전문학교가 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일제가 패망하여 일본인들이 쫓겨 가면서 특히 관립 의학 교육 기관은 교수진의 부족이 심각했는데, 다행히도 한국인이 교장을 맡던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활동하던 윤일선, 심호섭 등 유능한 한국인 교수들이 의학 교육의 공백을 메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 세브란스의과대학의 예과 모집 광고(1946)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졸업장(권숙정, 1947). ⓒ동은의학박물관 |
한국전쟁 이전의 의학 교육
일제에 의해 강제로 아사히의학전문학교로 개칭되었던 세브란스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동시에 6년제로 개편되면서 1946년 처음으로 예과 학생을 모집하였고, 1947년 세브란스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 국립서울대학교 설치 관련 관보(102호, 1946). ⓒ동은의학박물관 |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1948년 5월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이화여자전문학교가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됨에 따라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는데, 1945년 10월 행림원을 두고 그 안에 의학부와 약학부를 두었다.
이와 같이 해방 후 남한에는 6개의 의과대학이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
곧 이어 닥친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은 큰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전쟁을 통해 선진 의술, 특히 새로운 뇌신경외과 분야가 도입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의 스칸디나비아 삼국은 전쟁이 끝나면서 국가 중앙 병원인 국립의료원의 설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전시학생증(의예과 1학년, 1953). ⓒ동은의학박물관 |
이와 함께 북한 체제에서 의학대학을 졸업하여 피난 온 의사들은 그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았고 의사 국가 시험을 다시 치러야 했다.
의과대학의 변동
전쟁 중이던 1952년 4월 대구와 광주에 경북대학교와 전남대학교가 만들어지면서 대구의과대학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광주의과대학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세브란스의과대학은 연희대학교와 합쳐 1957년 1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의약대학 졸업장(이재민, 1952). ⓒ동은의학박물관 |
한편, 서울여자의과대학은 1957년 남녀공학으로 개편되면서 수도의과대학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우석대학교가 개교하면서 1967년 3월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가, 소유권이 바뀌면서 197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서울에 집중된 의과대학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톨릭의과대학과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이 신설되었다.
1936년 5월 서울에 성모병원을 개원 운영하고 있던 가톨릭은 1954년 4월 성신대학 의학부의 설립 인가를 받았다. 성신대학 의학부는 1959년 2월 가톨릭대학 의학부로, 1992년 4월 가톨릭대학교 의학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3년 3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제2도시로 규모가 커진 부산에서 1953년 9월 국립학교 설치령에 따라 6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진 부산대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의과대학도 만들어졌다.
이후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6개의 의과대학이 신설되었는데, 1965년에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1966년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1968년에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1970년에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1971년에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1971년 당시 남한에는 14개의 의과대학이 있었는데,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이 8개(연세, 우석, 이화, 서울, 가톨릭, 경희, 한양, 중앙)로 단연 많았고, 지방에는 부산, 경북, 전남, 조선, 전북, 충남 등 6개였다.
인구수 등을 고려할 때 1970년까지 각 도에 의학대학을 설치한 북한에 비해서는 아직도 의과대학이 적은 상태였다.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장(장병국, 1953)과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임명장(조상호, 1952). ⓒ동은의학박물관 |
의과대학 증설 열풍
그래서인지 1970년대 말부터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도 3개의 의과대학이 설립되는 등 우후죽순 격으로 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우선 1970년대 말에 5개의 의과대학이 신설되었는데, 1977년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원주), 1978년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천안), 1979년 계명대학교 의과대학(대구), 영남대학교 의과대학(대구), 인제대학교 의과대학(부산)이 개교했다.
1980년대에는 더욱 많아져 12개의 의과대학이 만들어졌는데 1981년 경상대학교 의과대학(진주), 고신대학교 의과대학(부산),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익산), 1982년에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춘천), 1985년에 동아대학교 의과대학(부산).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인천), 1986년 건국대학교 의과대학(충주), 동국대학교 의과대학(경주), 1987년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청주), 1988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천안),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수원),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울산) 등이 개교했다.
1990년대에는 10개의 의과대학이 만들어졌는데 1991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대구), 1995년 건양대학교 의과대학(논산), 관동대학교 의과대학(강릉), 서남대학교 의과대학(남원), 1997년 가천의과대학교(인천), 강원대학교 의과대학(춘천),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수원), 을지대학교 의과대학(대전), 포천중문의과대학교(포천), 그리고 1998년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제주)이 개교했다.
무엇을 위한 의과대학 증설인가?
이로써 남한에는 모두 41개의 의과대학에서 매년 약 3000여명의 의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러한 의과대학의 무분별한 신설은 무의촌을 없애고 의사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국민들이 값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묵살 당했다.
또 의과대학의 설립 허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의학 교육의 양적 팽창은 질적 수준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었다. 일부 의과대학은 아직도 교수 인원과 시설이 미비하여 파행적인 의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신설 학교들은 의사 국가시험의 합격률을 높이는데 주력하여 부실한 의학 교육에 대한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질적 수준 저하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학자들이 많다.
의학전문대학원의 대두
최근에는 정부의 강력한 추진으로 기존의 6년제 의과대학을 8년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시키는 학제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적지 않은 의과대학이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어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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