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 날을 '패전일'이 아닌 '종전일'이라 부르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시절 당시를 기리는 풍토가 이어져오고 있다. 참전 군인 등 '천황'을 위해 싸우다 숨진 이들의 위패를 모아 놓은 야스쿠니 신사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홍성담 화백은 이를 '야스쿠니의 미망(迷妄)'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4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서울 견지동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 열리는 '야스쿠니의 미망'전에서는 2006년부터 꾸준히 야스쿠니를 주제로 삼아 그려온 홍성담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쿠라 꽃으로 피어'…군국주의와 비극 보여주는 상징"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일련의 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바로 벚나무(사쿠라) 꽃잎이다. 일본에서 벚꽃은 본래 생명, 생산, 다산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군국주의 시절 일본 지도자들은 "천황 폐하를 위해 죽어 '사쿠라' 꽃으로 피어 야스쿠니 뜰에서 만나자"라고 선동하며 벚꽃의 의미를 죽음의 꽃으로 바꿨다.
홍성담 화백은 이처럼 변질된 의미를 가진 벚꽃잎을 통해 일본의 비극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즉 참전한 군인이 전사했을 때, 가족들은 슬퍼하지 못하고 천황과 국가를 위해 희생된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했다. 홍 화백은 "일본인들의 감성에는 아직도 그 비극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벚꽃은 또한 야스쿠니의 군국주의 '신앙'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서해성 작가는 "홍성담 화백은 벚꽃잎을 통해 야스쿠니 벚꽃의 엄숙을 가장한 광기를 정서적으로 폭로하면서, 다른 한편 희생자라는 점에서 일본, 한국, 대만 출신 전쟁 노예들의 허망한 죽음을 비극적으로 노래하고 있다"고 평했다.
홍성담 화백은 "야스쿠니는 단순한 추모 시설이 아니라 희생된 자들이 군신이 되어 일본을 지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며 "강제징용을 당한 수만 명의 조선인 병상 또한 야스쿠니에 군신으로 묶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야스쿠니가 있는 이상 아시아의 평화는 보장될 수 없다"며 "우리는 그런 국가주의적인 제사가 또 생겨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야스쿠니와 칼> ⓒ프레시안 |
"한국의 야스쿠니…그리면서 굉장히 외로웠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홍성담 화백이 선보인 작품은 '간코쿠 야스쿠니(한국의 야스쿠니)'이다. 그림 속에는 2009년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여러 소재가 담겨 있다. 이명박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전투경찰, 애국기동대 등이 제각각의 상징과 함께 작품에 등장한다. 또한 그림의 중앙에는 참사가 발생한 용산의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
홍성담 화백은 "70년대 반유신 투쟁, 80년대 광주 항쟁, 90년대 감옥과 고문을 겪으면서도 그림을 외롭지 않게 그려왔다"며 "그러나 이번 작품을 그리면서 굉장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아직도 예술을 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그림을 또 그려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 화백은 "앞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라며 조만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뜻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계속되며, 이후 일본 오키나와, 대만, 독일 등지로 순회전을 떠난다.
▲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홍성담 화백이 선보인 작품은 '간코쿠 야스쿠니(한국의 야스쿠니)'이다. 홍성담 화백은 "이번 작품을 그리면서 굉장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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