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를 소개하는 영어 자막은 너무 빨리 지나갔고 가끔은 너무 답답했다. 선수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
베이브 루스도 입었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전통의 명문 양키즈 선수들을 파악하는 것은 이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선수들의 면면이 익숙해진 뒤에는 좋은 점도 있었다. 어느 순간 등번호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작은 기쁨이 바로 그 것.
이처럼 야구 선수들에게 등번호는 또 다른 이름이다. 유니폼 뒤에 새겨진 등번호가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야구 향한 도전의 시작과 프로야구 성공 부른 박철순의 21번
82년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먼저 기억되는 등번호는 뭘까?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단일 시즌 22연승 신화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원년우승을 견인한 박철순의 21번이다.
타격 시 반발력이 덜 한 너클볼(최근 들어서는 팜볼이었다는 견해가 우세)로 중무장한 역동적 투구의 박철순과 OB 유니폼은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인기상품이 됐다.
21번은 박철순이 한국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할 때,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달았던 번호이기도 하다. 그가 시작한 도전은 61번의 '코리언 특급' 박찬호에 의해 만개했다.
이 때문에 21번은 한국 야구의 미국 프로야구를 향한 도전의 시작이었으며 한국 프로야구의 성공을 부른 의미있는 등번호로 기억되고 있다. 두산은 2002년 박철순의 등번호 21번을 영구결번했다.
은근과 끈기 속에 대기록을 잉태한 송진우의 21번
▲ 송진우 선수. ⓒ뉴시스 |
16일 전격 은퇴를 선언한 한화 송진우의 21번도 프로야구계의 영원한 전설이다. 그는 기록의 사나이다.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승(210승), 최다 이닝(3003 이닝), 최다 탈삼진(2048개) 기록은 모두 송진우의 것.
공교롭게도 그는 그의 등번호와 같은 21년 간 프로야구 마운드를 지켰다. 그는 홈 플레이트 좌우 폭을 가장 잘 활용할 줄 아는 제구력과 타자와의 수싸움에 능했다.
특히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은 그의 대기록 수립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투수는 제5의 내야수'라는 격언에도 가장 잘 어울리는 수비형 투수이기도 했다. 2002년 그가 최초로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을 때, '아마 메이저리그 처럼 수비 실력으로만 골든글러브를 줬다면 그는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휩쓸었을 것이다'라는 게 야구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하지만 그의 최대 강점은 숱한 난관을 극복하며 21년 간 프로야구 정글에서 오롯이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그가 프로에 들어 와 큰 부상 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된 이유에는 김인식 감독의 역할도 있었다.
동국대 시절 김인식 감독(현 한화 이글스)은 부상 중인 송진우를 미련 없이 외야수로 전향시켰다. 투수로서의 먼 장래를 먼저 생각해서 내린 이 결정은 송진우가 불혹의 전설을 쓰는 데에 일조했다.
돌아온 27번의 역전 드라마
한국 야구역사에서 호남은 한 때 야구의 불모지로 통했다. 하지만 1972년 군산상고의 등장은 야구 판에서 영호남 라이벌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군산상고는 명문 부산고에 5-4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그들에게 붙여진 별명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야구 열풍은 전남의 광주일고 등으로 전파됐고, 호남 야구는 고교야구 관중 동원의 새로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주축 선수는 훗날 프로야구 초대 홈런왕이 되는 김봉연.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등에 27번을 새기고 뛰었다.
그의 27번은 프로에 와서도 역전 드라마의 상징이 됐다. 1983년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무려 얼굴을 314 바늘이나 꿰매야 했던 충격적 사고였다. 하지만 그는 같은 해 한국 시리즈에서 콧 수염을 기르고 나와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았다. '야구명가' 해태의 첫 우승은 이렇게 찾아 왔다.
올 시즌 김봉연의 27번은 LG에서 친정 팀으로 되돌아 온 김상현에게 전달됐다. 변화구 대처능력에 자신감을 찾은 김상현은 폭발했다. 17일 현재 그는 타점 1위, 홈런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열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꿈꾸는 타이거즈 팬들에게 그의 활약만큼이나 그의 등번호 27번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도 역시 김봉연과 같은 군산상고 출신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도 "등번호가 같은 김봉연과 김상현의 모습이 겹친다"고 말했다. LG시절 2군에서는 펄펄 날았지만 1군 경기에서만 서면 작아졌던 김상현의 인생 역전 드라마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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