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의 위기
▲ 정태인 교수. ⓒ프레시안 |
그는 17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주요국의 경제위기 대응과 시사점에 관한 전문가토론회'에서 현 위기를 '3중의 위기'로 규정했다. 10년마다 오는 산업순환 상의 위기, 시장만능론이라는 지난 30년간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그리고 100년에 한번쯤 오는 패권국가의 위기가 겹쳐진 위기라는 설명이다. 1년이 지난 지금, 구조적 차원의 문제 해결은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정 교수는 "가장 쉬워 보이는 10년짜리 위기탈출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위기의 근원이자 핵심인 미국경제의 경우 "이미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가 모두 GDP의 6%에 이른 파산생태인데 이런 대규모 지출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이미 여러 번의 금융스캔들이 드러낸 잘못된 유인구조와 부적절한 규제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데 이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보다 훨씬 규모가 큰 CDS, 회사채, 자동차 채권 등에서도 앞으로 1-2년 내에 추가로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보다 더 규모가 큰 상업용 부동산의 값이 떨어진다면 이런 문제가 모두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한데 과연 현재의 금융 대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더 큰 장기적 문제는 현재의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라면서 달러 패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모든 기축통화국가는 강한 통화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국제질서 유지의 비용을 국제수지 악화라는 형태로 치를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미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넘어 80년대 이래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는 것. 그는 이른바 '포스트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 "아이켄그린(UC 버클리대 교수)이 예측하는대로 달러와 유로가 사실상의 복수의 기축통화로 기능하다. 여기에 아시아 통화(위안, 엔, 또는 아쿠)가 추가되는 정도가 현실적인 경로"라고 예측했다.
그는 "어느 경우든 미국의 달러 패권은 무너진다"며 "현재의 10년짜리 위기가 파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앞으로 꽤 오랫동안 우리는 지극히 불안정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기존 패권은 무너지고 있지만 신흥 패권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MB정부의 남은 카드는 '민영화'
문제는 위기에 대응하는 한국의 자세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박정희식 토목건설정책의를 덧씌운 'MB노믹스'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세수가 줄어들고 재정지출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법인세, 소득세, 부동산세 등 감세를 고집하고 있다. 감세정책으로 인해 임기 중 96조 원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등 재정건전성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3년간 30조 원 가량이 투입되는 '4대강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 불황에서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에 더 매달리게 만든다. 정 교수는 "2009년 수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20% 수준이고 앞으로 세계 경제가 V자형으로 좋아질 전망은 거의 없으므로 앞으로도 이 수치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면서 "이는 고용이 작년 대비 10%씩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안팎으로 활로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공기업 민영화'가 불가피하다고 정 교수는 전망했다. 국채 발행은 정부가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할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것.
그는 "촛불집회에 밀려 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전기-가스 민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민영화는 괴담이라고 밝혔지만 금년 적자규모만 50조 원이 넘는데다 내년부터 매년 25조 원의 감세 규모를 유지하고 현재 예정돼 있는 재정지출을 집행하기만 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떠안게 될 것이기 때문에 민영화는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는 "담배세, 주세 인상을 죄악세라는 명목으로 들고 나올만큼 증세를 하기 어렵고 유동성 홍수 속에서 인플레이션 정책을 쓰기도 어렵다면 이 정부가 꺼낼 카드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민영화 밖에 없다"며 "자산이 30-40조 원에 이르는 네크워크 산업(전기, 철도, 수도, 가스, 우편 등)을 민영화할 경우 1년에 하나씩만 팔아도 한해 재정적자분은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대처 수상이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한 것도 결국 감세에 따른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며 "이명박 정부가 내년부터 민영화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민영화, 공공성의 파괴
'철밥통'으로 표현되는 공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불만도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일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문제는 공기업 민영화는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과 공공요금의 인상 등 공공성 파괴를 불러온다는 점. 정 교수는 "공기업들을 인수할 능력은 재벌만 갖고 있지만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제 비준만 남겨 놓은 한미 FTA는 한번 민영화되거나 규제가 완화된 분야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라도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며 "래칫 조항(역진불가능 조항)이나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은 재국유화라든가 공적 규제의 강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 한-EU FTA 등 신자유주의 통상정책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