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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서른 살, 세상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화제의 책] <후퇴하는 민주주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신문을 보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해가 간다. 우울한 뉴스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큰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는 것이 최근의 가장 '좋은' 소식일 정도니.

나쁜 소식만 들리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 때문일까?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있다. 언론사,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각종 시사 강좌에 참석자가 부쩍 늘었다. 정치, 사회, 경제 등 한눈에 봐도 지루해 보이는 강좌인데도 사람이 북적거린다.

더운 날씨, 바쁜 생활에 강좌를 찾아다니는 게 쉽지 않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 나왔다. 김규항, 김상봉, 김송이, 박노자, 서경식, 손낙구, 손석춘, 하종강 등의 강의를 정리한 <후퇴하는 민주주의>(철수와영희 펴냄)가 그것.

이 책은 2008년 하반기, 월간지 <작은책>이 기획한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연속 강연을 엮은 것이다. 부제('서른 살, 사회과학을 만나다')는 책의 성격을 말한다. 저자들은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강연의 일부를 들여다보자.

"진보라는 것은 '행복하자', '잘 살자', 바로 이것이다"

▲ <후퇴하는 민주주의>(김규항 외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프레시안
"다르게 살자는 것은 내일 아침부터 권정생 선생님의 삶으로 이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괴상하고 비정상적인 삶에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고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가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명박 욕만 할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은 '진보'를 화두로 꺼냈다. 정치적인 색이 짙게 풍기는 그 단어.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저녁까지도 학원을 돌고, 고등학교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새벽 두 시에 들어오고, 핸드폰이나 엠피쓰리, 운동화, 이런 걸 가지고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고, 거의 모든 아이들이 장래 희망이 없거나 아니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연예인인 이런 사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런 '괴상하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문제를 느끼는 것부터 '진보'가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김규항 발행인은 "진보라는 것은 '행복하자, 잘 살자'는 것이다"라며 "진짜로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믿고서 인생을 소모시키거나 더욱더 고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하자, 더 잘 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바르고 정의롭기 때문에 고통과 헌신을 감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짜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지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안 가기 운동과 동문회 불가입 운동, 왜 없나?"

한국에서 정규직 취업이 되지 않아 결국 노르웨이에 건너가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일한다는 박노자 교수.

'대한민국 주식회사'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던 박 교수는 "한국은 자본주의가 확산되어 가면서 사회적 연대가 말살되고, 가족주의가 대단히 강화된 사회"라며 "가족이나 연고 집단을 넘어선 사회 활동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적이고 분산된 사회 모델 그대로인데, 한국 지배 세력들한테 대단히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사회에 없는 두 가지 운동을 꼬집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안 가기 운동과 동문회 같은 연고 집단 불가입 운동. 동문회가 가장 강력한 연고 집단일 텐데, 거기 안 간다는 사람 아무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학벌 없는 사회를 꾸준히 역설해온 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강연에서 또 다시 '학벌에 몸을 바치는' 사회 풍토를 지적하며 "누군들 이 사회에서 천민으로 살고 싶겠나"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사생결단을 한다. 일류 대학 가기 위해서. 지금 대학 들어가는 학생 수가 한 60만 명 된다고 하면, 그중 서울대 들어가는 학생 수는 3000명 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난 게임인데, 한국 학부모들의 탐욕은 놀랍다. 3학년 2학기가 되기 직전까지는 자기 자식이 천재인줄 안다.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맹목이다."

"역사의 순리라는게 그렇게 무섭다"

책의 마지막 장은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과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 대학 교수의 대담이다. 노동운동에 한평생 몸을 담은 하종강 소장과 재일 조선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서경식 교수. 그들의 대화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주의와 노동운동의 현실을 넘나들었다.

하종강 소장은 "서경식 선생님은 국가주의, 국민주의 이런 것을 부정적으로 많이 얘기한다"며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어쩌면 이것조차 진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 세력이 즐겨 쓰는 단어가 '국익'인데,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는 각종 정책들은 절대로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며 "그러니까 국익을 강조하는 국가주의, 국민주의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진보적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켄 로치 감독(노동, 빈곤 등의 주제를 많이 다룬 영국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우리 눈에는 그 내용이 싱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빵과 장미>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점을 느꼈는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한 백 배 이상 더 드라마틱하게 싸운다. '인간의 최악의 시기에 동일방직 노동자가 투쟁을 했다'고 얘기하셨는데, 작년(2007년)에 광주 시청 환경 미화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그때와 똑같이 옷을 벗고 싸웠다. 한 달에 80만 원 받자고. 그리고 다 끌려 나왔다."

이어 두 대담자는 '희망'에 대해 논했다. 우선 서경식 교수는 "일본 같은 경우 20년 동안 생활 보수화 과정이 지나고 나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에 유보지가 없고, 희망이 거의 안 보이는 상황이 되고, 신자유주의 권력들이 자본들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지금 이뤄졌다"며 한국 사회가 같은 길을 가지 않을지 우려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종강 소장은 "짧게 보면 희망이 없지만 조금만 길게 보면 희망이 있다"고 이어받았다.

"'공무원 노조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것이다', 이건 거의 예언 수준이다. 선진국에는 대부분 교수 노조, 경찰 노조 들이 있다. '대한민국에 언젠가는 경찰 노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건 100퍼센트 맞는 정세 분석이다. 다만 언제 만들어질 것이냐 그 시기가 문제일 뿐인데, 아마 여러분 짐작보다 훨씬 빠를 거다.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는 제 짐작보다 5년쯤 빨랐다. 경찰 몇백 명이 파면당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는 경찰 노조가 정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이니까. 역사의 순리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버스, 지하철 안에서 이 책 한 권을 들고 이들의 강연 속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자 '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작은책>이라는 주최 측 이름에 걸맞게 책의 크기와 무게 또한 작고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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