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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국립의대 1회 졸업생의 첫 직장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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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00년 전 국립의대 1회 졸업생의 첫 직장은? 군대!"

[의학사 산책] 의학교와 대한의원 졸업생들

의학교는 설립 직후부터 운영이 순탄하지 못했는데, 일본인 교사의 잦은 교체, 학생들의 퇴학과 전학, 정부의 재정 지원 부족 등 이유 때문이었다.

3년 과정의 의학교는 1902년 첫 졸업생의 배출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1902년 8월 개원한 부속병원에서 약간의 임상 실습을 마친 후인 1903년 1월 9일이 되어서야 입학생 50여 명 중 19명이 최초로 의학교를 졸업하였다.

예산을 들여 의학교를 설치하고 졸업생들을 배출했건만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실질적인 힘을 가지지 못한 조선 정부는 이들을 활용해 국민의 보건의료 환경을 증진시켜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의사'로서 공인하는 의술개업인허장도 수여되지 않았다.

▲ 의학교 제1회 졸업생 이제규. ⓒ동은의학박물관
이후 의학교에서는 제2회로 13명(1904년 7월 2일), 제3회로 4명(1907년 1월 29일)이 졸업해 모두 36명이 졸업하였다. 특히 제3회 졸업생 중에서 홍석후와 홍종은은 자신이 환자를 진료하기에 너무 경험이 적은 것을 염려하여 에비슨에게 부탁해 제중원의학교에 편입하였다. 그들은 1908년 졸업과 동시에 의술개업인허장을 부여받았다.

대한의원에서는 제1회(교육부)가 13명(1907년 7월 9일), 제2회(부속 의학교)가 5명(1909년 11월 16일)이 졸업하였는데, 이들은 이미 폐지된 의학교에 입학했던 학생들이었다. 대한의원 제2회 졸업생들은 1909년 11월 의술개업인허장을 수여받았으며, 이후 의학교와 대한의원의 이전 졸업생에게도 인허장이 수여되었다.

의학교와 대한의원 졸업생의 차이

조선 정부의 의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과 통감부의 대한의원에서 졸업한 학생들은 졸업 후 진로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바로 자혜의원의 설립에 기인한다. 대한의원 졸업생들의 대부분은 전국에 설치된 자혜의원의 조수로 근무하였다.

반면 의학교 졸업생들은 의학교 교관 및 군의로 활동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임시위생원 의사, 유행병 예방위원 등으로 임명되었고 때로는 전공과 무관한 관리로 활동한 경우도 있었다.

의학교 교관

▲ 의학교 제1회 졸업생 김교준의 관원 이력서. ⓒ국사편찬위원회
의학교 제1회 졸업생 19명은 1900년 10월 25일 반포된 칙령 40호에 의해 졸업과 동시에 모두 의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교원 임용고시와 비슷하게 단순히 자격을 부여한 것일 뿐이었으며, 정규 교관이 결원된 경우에 특별 시험을 거쳐 통과해야만 정규 교관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정규 교관이 된 제1회 졸업생은 2명뿐이었는데, 김교준과 유병필이 그들이었다. 김교준은 1903년 2월 21일 정규 교관으로 임명되어 1904년 1월 25일 빈전도감의 감조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학생 교육에 참여하였다. 유병필은 1905년 1월 19일 정규 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07년 3월 15일 대한의원 교육부 교관, 이어 1908년 1월 1일 대한의원 의육의 교수로 임명되었다가 1909년 1월 31일 사임하였다.

의학교 제2회, 제3회 졸업생들 중에는 정규 교관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군의

의학교 제1회 졸업생 19명 중 방한숙(군의 임명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을 제외하고 18명이 군의로 임명되었다. 이들의 최종 계급을 보면 3등 군의장이 1명(김교준), 1등 군의가 3명, 2등 군의가 6명, 3등 군의가 8명이었다. 한의사들이 군의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기에 김교준은 김익남을 보좌하면서 활동하였다.

▲ 3등 군의 임명 교지(한의사 박동기). ⓒ동은의학박물관
의학교 졸업생 중 가장 먼저 군의가 된 것은 허균인데 1903년 3월 21일 친위 제1연대 제2대대 군의보로 임명되었다. 이후 1903년부터 1905년 초까지 임관했던 한경교, 박희달, 유병필, 손창수의 계급은 군의보였다. 이에 비해 1904년 중반부터 1905년까지 임관된 의학교 졸업생들의 계급은 대개 3등 군의였다.

이와 반면 1906-7년에 임관된 윤상만, 이규영, 이병학, 한우근 등은 보직이 없었는데, 이로 미루어 이 시기의 군의 임명은 의학교 교관의 예에서와 같은 형식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군의로 근무하던 유병필이 의학교 정규 교관으로 임명되었지만 군적이 계속 유지되다가 1907년 9월 3일자로 면관된 것이나, 3등 군의로 임명받은 이규영이 일본에 유학했던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1907년 군대 강제 해산 이전 한국군이 일본군과 함께 의병 탄압에 가담했는데, 이 시기에 보직을 갖고 군의로 활동했던 사람은 김명식, 김봉관, 김상건, 김성집, 박희달, 손창수, 안우선, 유병필, 이제규, 허균 등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인 14명은 구한국 군대 해산 직후인 1907년 9월 3일 면관되었고, 김교준과 손창수는 1909년 7월 31일 면관되었다. 그리고 김명식은 한일합방 이후 일본 군의로 2등 군의정까지 승진하였다.

제2회 졸업생 중 김수현은 1904년 6월, 장홍섭은 1904년 9월 군의로 임명되었으며, 1905년 4월 김달식과 최익환이 군의로 임명되었다. 이들 4명은 2등 군의로 승진하였다. 나머지 제2회 졸업생들과 제3회 졸업생 4명은 보직이 없는 3등 군의로 임명되었다.

기타 의료 관련 활동

▲ 의학교 제1회 졸업생 이규영의 광제원 임시위원 임명장(1902). ⓒ동은의학박물관
제1회 졸업생 중 이규영과 이제규는 1902년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광제원 임시위원으로 임명된 바 있는데, 모두 912명이 임명된 임시위원은 의학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도 남발되었다.

1902년 10월 7일에는 김교준을 제외한 18명이 임시위생원 의사로 임명되었고, 1904년 10월 29일에는 김봉관, 김상건, 손창수, 윤상만, 이제규, 채영석이 유행병예방 임시위원에 임명되었다. 조선 정부는 의학교 졸업생을 광제원과 위생국에 파견해 근무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제2회 졸업생 중 김달식은 종두의양성소 출신으로서 종두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강원영, 최국현, 최익환, 김봉관, 이기정 등이 유행병예방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최국현은 1904년 9월 검역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들 중 강원영과 지성연은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의원에서 조수로 근무했는데, 이는 일본 유학 경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유학

의학교 졸업생 중 일본에 유학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제1회 이규영이 1906년 10월 일본에 유학하였고, 제2회 강원영과 지성연이 오카야마(岡山)의학전문학교에 유학하였다.

기타 활동

제1회 졸업생 중에는 의학과 무관한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김교준은 군물 조사위원과 빈전도감 감조관을 역임했고, 안우선은 광상기수교습소를 졸업했으며, 이제규는 태의원 분주사, 한우근은 임시황실유 및 국유재산조사국에서 활동했다.

제2회 졸업생 중 차현성은 1907년 당시 상방사 서기랑이었으며, 홍종욱은 다시 일어학교를 졸업하고 탁지부 번역관으로 활동했다.

경술국치 직전인 1910년 4월 현재 의학교와 대한의원을 졸업한 54명의 통계를 보면, 개업이 24명이었고, 군의, 교관, 의원 및 조수 등의 의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17명으로 모두 41명이 개업이나 의술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조선 정부가 의욕적으로 나서 설립한 의학교는 통감부 시기에 폐교됨으로써 의학 교육을 통해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다. 조선 정부의 후속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의학교 졸업생들은 자신들의 역할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감부의 자혜병원 같이 조선 정부가 지방에 서양식 병원을 건립할 여력이 있었더라면 이들 의학교 졸업생들의 역할이 달라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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